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예표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실제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체험
위트니스 리의 사역에서의 발췌
참고 문헌
    

교회사에 걸친 체험


(이 부분은 앞으로 더 확장될 것임)

우리는 삼일 하나님으로부터 아주 특별하게 초대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교통 안으로 부르심 받아(고전1:9)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풍성에 참예하게 되었습니다. 초대 사도들은 이 교통을 누렸고 그들의 사역의 목표는 우리를 이 같은 교통 안에 포함시키는 것이었습니다(요일1:1-3).

오랜 세월에 걸쳐 교회는 일반적으로 초대 사도들의 이상과 체험으로부터 멀어졌지만 여전히 우리는 참되게 그리스도와의 교통을 체험한 교회사에 걸친 믿는이들의 빛나는 간증들을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몇몇 믿는이들의 간증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의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더욱 풍성하게 체험한 그들의 본을 따르기 원합니다.

제한 받으신 예수님에 대한 체험

워치만 니(1903-1972)는 중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십 칠 세 때에 주님을 영접했고 즉시 주님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사역은 매우 풍부했고(그의 전집은 62권으로 되어있습니다.) 중국에 있는 믿는이들뿐 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믿는이들을 함양했습니다. 1952년 그의 믿음으로 인해 공산당에게 감금되어 1972년 죽기 전까지 감옥에서 지냈습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제한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한 알의 밀알로서의 그리스도를 체험했습니다. 비록 비참한 환경 속에 감금되어 있었지만 그는 주님 안에서 그의 기쁨을 유지했습니다. 다음 편지들은 그가 감옥에서 보낸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칙 안에 살았던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공산당의 감시 아래서 그리스도에 대해 공개적으로 쓸 자유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1972년 4월 22일

내 건강 상태는 큰 처형도 아는 바 만성병이요 기관지에 관한 질환입니다. 병이 발작할 때는 아주 고통스럽고 발병하지 않더라도 이 병은 여전히 제 몸에 있습니다. 그래서 좋고 나쁜 차이가 없고 다만 발작하는가 발작하지 않는가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여름날 햇볕을 많이 쬐면 피부색을 약간 바꿀 수 있지만 병을 고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난 여전히 내 기쁨을 유지하고 있으니 안심하십시오. 큰 처형도 몸조심하시고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1972년 5월 6일

저는 다른 사람을 번거롭게 하지 않으려고 최대한으로 생활을 간소화했습니다. 병중에 있으면서 정말 나의 친족들을 생각하게 되며, 그들과 함께 있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는 또한 환경의 안배에 순종합니다.

1972년 5월 30일

핑찡 처형:

저는 산하파 제 14대대로 옮겨졌습니다. 이곳은 역에서 십 리길이나 되고 또 산 하나를 넘어야 합니다. 오시기 어려울 테니 이제부터는 오시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병중에서도 여전히 기쁨을 간직하고 있으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저는 자신이 질병으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도록 여전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핀훼이의 유골은 처형이 처리해주십시오. 모든 것을 처형에게 맡기겠습니다. 어떻게 하든 저는 동의하겠습니다. 이 편지는 짧으나 나의 느낌은 너무나 깊습니다. 다만 축복이 있기를 바랄 뿐...

다음은 워치만 니의 조카손녀의 기록입니다:

1972년 6월, 우리는 농장으로부터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큰 이모할머니와 함께 농장으로 급히 갔는데, 그곳에 도착해서야 우리는 비로소 그들이 할아버지를 화장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할 수 없이 그분의 유골밖에 볼 수 없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 그분은 베개 밑에 종이 한 장을 남겨 놓았는데, 그 위에는 매우 떨리는 손으로 적은 몇 줄의 글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분의 일생으로 그분이 죽기까지 붙잡았던 진리를 증명하셨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사람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 죽으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셨다. 이것은 우주 가운데 가장 놀라운 사실이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죽노라. 워치만 니”. (위트니스 리, 금세기 신성한 계시의 선견자, p.200)

만족시키는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

찰스 스펄전(1834-1892)은 영국 런던의 능력 있는 전도자로서 그의 사역은 수천만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는 참되게 달콤하고 만족케 하는 무화과로서의 그리스도를 참되게 체험했습니다. 다음은 그의 글들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내가 고백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까지 결코 만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내 혼을 예수님께 드렸던 그 귀한 시간이후 나는 견고한 기쁨과 평강을 찾았다. 그리고 청년의 환락과 유년시절에 상상했던 기쁨과 편안함은 내게 헛되고 괴로움이었다. 내 구주를 발견하고 그분의 사랑스러운 발을 붙잡는 것을 알게된 날은 결코 잊을 수 없던 날이었다.

생명 안에서 그분은 내 생명이시고, 사망 안에서 그분은 사망중의 사망이시며

 

내가 증거할 수 있는 것은 내 주인 같은 주인을 가진 종이 없었고 그분이 나에게 하신 것 같은 친척을 가진 형제가 없었고 그리스도의 어떠하심과 같은 남편을 가진 아내가 없었고 더 좋은 구주를 가진 죄인이 없었고 더 좋은 대장을 가진 군사가 없었고 그리스보다 더 위로해주시는 분을 가진 애통자가 없었다. 나는 그분만을 원했다. 생명 안에서 그분은 내 생명이시고 사망 안에서 그분은 사망중의 사망이시며 가난 중에서 그리스도는 내 풍성이시고 병중에서 그분은 내 침상이시며 어두움 속에서 내 별이시며 밝음 속에서 내 태양이시다. 나는 축복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 그분 자신의 심장의 피로 나를 구속하셨음을 믿음으로 이해하고 어두운 절망의 구덩이에서 그분이 나를 일으키시고 내 발은 반석 위에 두셨음을 달콤한 체험으로 안다. 그분은 날 위해 죽으셨다. 이것이 내가 가진 모든 만족의 뿌리이다. 그분은 내 죄를 모두 제하셨다. (J.C. Carlile, Charles Spurgeon, 32-33)

승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

위트니스 리(1905-1997)는 19세때 중국에서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그 후 8년이 지나 워치만 니의 동역자로서 주님을 전시간으로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에서 신실하게 수고하였고 1949년 워치만 니는 위트니스 리를 대만으로 보냈는데 이는 공산당을 피해 그들의 사역의 일을 계속하기 위함 이였습니다. 그는 수 년 동안 극동지역에서 사역했고 1962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죽기 전까지 신실하게 계속해서 사역했습니다.

중일전때 위트니스 리는 감옥에 갇혔습니다. 다음은 그 체험에 대한 그의 간증입니다:

1943년, 나는 주님의 사역 때문에 일본 헌병에 의해 투옥되었다. 그 당시 일본군은 중국 본토의 큰 지역을 점령했었는데 내가 사역하고 있던 도시는 그들의 점령 하에 있었다. 감옥에 갇힌 동안 나는 거의 날마다, 오전에도 오후에도 재판을 받기 위해 끌려나갔다. 오전에는 9시에서 12시까지, 오후에는 2시 30분에서 6시까지 그들 앞에 서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상황이었는지 여러분은 상상할 수가 없을 것이다. 주님 외에는 내게 아무런 도움도 없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 외에는 도움 받을 길이 없었다. 그들은 나를 독방에 가두었다. 왜냐하면 내 말이 밖에 나갈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항상 기도 외에 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간증할 수 있는 것은, 나는 기도하면 할수록 내가 하늘에 있다는 사실을 더욱더 느끼게 되었다. 나는 감옥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하늘에 있었다. 내가 관리들 앞에 재판을 받으러 끌려나갔을 때 그들보다 훨씬 더 높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들 아래 있지 않고 그들 위에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승천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감옥은 내게 아무 것도 아니었고, 그리스도가 내게 모든 것이 되셨다. 오, 형제 자매들이여, 그들의 모든 위협 가운데서도 나는 하늘에 살고 있었다.

나는 기도하면 할수록 내가 하늘에 있다는 사실을 더욱더 느끼게 되었다.

 

3주 동안 이런 식으로 다룬 후, 그들은 내게서 아무런 죄를 찾아 낼 수 없었다. 그들의 유일한 판결은 내가 미신적인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 선생, 당신은 하나님에게 붙잡혔군”이라고 말했다. 어느 날 그들은 나를 조롱하려고 감옥에서 불러냈다. “하나님과 나라 중 어느 것이 더 중대한지 말해 보시오”라고 내게 물었다. 나는 그들의 술책을 알아차렸다. 만일 나라가 더 중대하다고 말했다면 나를 더 이상 미신적인 사람이라 판단하지 않고 애국자라 했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애국적인지 아닌지, 내가 나라를 염려하는지 안하는지 결론 지으려는 의도였다. 나는 주저했다. 그들은, “빨리빨리 말하시오”라고 재촉했다. 그들이 “빨리”라고 말하면 할수록 나는 더 망설였다. 마침내 그들에게 말했다. “내게는 하나님이 첫째요”라고 그랬더니 그들은, “좋소! 오늘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빵을 갖다 주게 하시오. 우리는 더 이상 음식을 주지 않겠소.” 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또 다른 위협이었다. 나는 그들을 보고 웃고는 감옥으로 돌아갔다.

바로 뒤에 한 그리스 청년이 체포되어 투옥되었는데, 헌병은 그 청년이 그 도시와는 관계없고 나와도 의사 소통이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여 조그만 감방에 그 청년과 나를 함께 넣었다. 저녁 식사시간이 되었을 때 음식을 분배하는 일본 군인이 우리 감방으로 왔다. 중국말을 하지 못하는 일본 군인은 그의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나를 놀려댔다. 그것은 곧, 그는 내게 아무 것도 주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이 나를 먹여주실 것임을 의미했다. 그는 그리스 청년에게 약간의 빵을 전해 주었을 뿐 내게는 아무 것도 주지 않고 떠나 버렸다. 그가 나간 후에 그리스 청년은 나와 이야기하며 나의 상황에 대해 물었다. 나는 그에게 내 이야기를 다 해 주었다. 그랬더니 그는, “오, 이 선생님. 저는 이 음식을 먹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잡수십시오.”라고 말했다. 나는, “그렇지만 이것은 당신의 몫입니다.”했더니 그는, “당신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내가 당신의 고통을 함께 나누어서는 안 된단 말입니까?”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억지로 빵을 먹게 하고 우유를 마시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극심하게 아팠지만, 기도할 때 내가 병중에 있지 않고 훨씬 더 높은 하늘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다음 날 그들은 또 다시 나를 놀리려고 감옥에서 불러내 갔다.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에게 음식을 갖다 주셨소?” “그렇소”라고 나는 대답했다. 그들은 나에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내가 하나님 외에는 아무 것도 관심하지 않는 미신적인 사람일뿐이라고 느꼈다. 그러더니, “좋소. 우리는 이발사를 데려와서 이발을 시켜주고 식당에서 가져온 좋은 음식을 주겠소.”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어떠한 체험인지 아는가? 이것은 승천한 그리스도를 체험한 것이었다. 우리는 승천하신 분 안에 있다. 그분을 체험할 때 우리도 또한 높여진다. 우리도 초월하게 되며 모든 것이 우리의 발아래 있게 된다.

이것이 어떠한 체험인지 아는가? 이것은 승천한 그리스도를 체험한 것이었다. 우리는 승천하신 분 안에 있다. 그분을 체험할 때 우리도 또한 높여진다. 우리도 초월하게 되며 모든 것이 우리의 발아래 있게 된다. 나는 감옥에서 석방된 후 곧 결핵을 심하게 앓았다. 나는 여섯 달 동안 꼼짝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고, 2년 반 동안이나 활동을 제한 받았다. 외적으로 말하면 그날들은 참으로 어두운 나날이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기도할 때마다 침대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나는 극심하게 아팠지만, 기도할 때 내가 병중에 있지 않고 훨씬 더 높은 하늘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당시 내가 주님 안에서 누리고 있었던 기쁨이 어떤 것인지 여러분은 모를 것이다. 투옥과 핍박, 빈곤과 질병이 있었지만, 그러나 주님을 찬양하라! 승천한 주님이 나의 길이었다. 초월하신 주님이 하늘에 이르는 나의 길이었던 것이다. (위트니스 리,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 3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