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트니스 리의 사역에서 발췌함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예표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실제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체험
위트니스 리의 사역에서의 발췌
참고 문헌
   

위트니스 리는 자주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사실상, 1962년 미국에서 처음 가졌던 특별집회의 제목이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였습니다. 그 특별집회의 메세지는 후에 책으로 출판되었고 이 웹사이트는 주로 그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다음은 위트니스 리의 메세지 중에서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15가지 항목으로 나눈 것들에 대한 여러 가지 발췌문들입니다.


  1. 그리스도의 몸

  2. 교회 생활

  3. 그리스도를 누림

  4. 그리스도를 체험함

  5. 음식

  6. 하나님의 경륜

  7. 하나님의 계획

  8. 좋은 땅

  1. 왕 국

  2. 지방 교회

  3. 주의 회복

  4. 믿는이들의 분깃

  5. 구 원

  6. 그 영

  7. 변 화

항 목

그리스도의 몸

그리스도가 우리의 마음 안에 온전히 거처를 정하실 때 우리 성도들은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신 만유를 포함하신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의 분배하심으로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단체적인 표현을 위해 하나님의 모든 충만 안으로 채워진다(엡3:19b).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어떠하심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의 분배하심으로 채워지는데 삼일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채워질 때까지 채워진다. 이 충만은 하나님의 표현이고 이 표현은 그리스도의 몸, 삼일 하나님의 유기체이다. (top)

(위트니스 리, 신성한 삼일성, 영문판 p.27)

그리스도의 몸은 단지 여러 나라의 믿는이들의 구성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태어났다. 우리의 위와 우리의 두 눈도 우리의 몸안으로 태어나 유기적으로 우리의 몸안으로 조성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안으로 태어나 유기적으로 조성되었다. 나는 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다 어떠한 조직 안으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여러분이 여러분 안으로 받아들이고 그 안으로 믿었던 바로 그 그리스도와의 거듭남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안으로 조성된 살아있고 유기적인 지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의 몸의 조성은 생명 요소이신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로 한다. 오늘날 여러분이 구성인 조직에 있지 않으면 조성인 유기체 안에 있을 것이다. 이 유기체는 단지 진리가 아니라 만유를 포함한 생명 요소인 바로 그 그리스도로 조성된다. (top)

(위트니스 리, 긴급한 필요, 영문판 p.189-190)

이 장에서 우리는 생명 요소이신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그리스도의 몸의 조성을 보기를 원한다. 이러한 단어들은 영어에서 매우 일반적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생명 요소란 표현은 그리 일반적인 것이 아니다. 교회를 조성하는 생명 요소가 무엇인가?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단순한 그리스도로만 조성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 요소이신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로 조성되어야 함을 보아야 한다.

이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는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다(골2:9).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시고 매우 추상적이며 비밀스러우신 것을 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어떠하신지 무엇이신지 어디에 계신지 말하기는 어렵다. 누가 할 수 있는가? 아무도 이것을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러한 삼일 하나님이신 하나님은 보이는 사람 안에서 육신으로 체현 되셨다(요1:14). 그리스도는 이 사람이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그리스도는 육신의 사람 안에 체현 되신 바로 그 삼일 하나님이시다.

삼일 하나님의 체현인 이 그리스도는 생명의 근원이고 생명의 근원으로서 그분은 생명 나무로 상징되었다(창2:9, 계2:7, 22:2). 성경 읽기는 쉽지 않다. 성경은 단순한 책이 아니다. 간단한 단어들이 많지만 수사적 표현 또한 많다. 이 상징 중 하나가 생명 나무이다. 그러한 나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복숭아나무와 사과나무와 다른 수백 개의 나무들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있지만 생명 나무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결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 안에는 생명나무, 생명의 나무가 있다.

요한 복음(15:1, 5)에서 주님이 그분이 나무라고 말씀하신 것을 주의해 본 적이 있는가? 하지만 그분은 하늘로 너무 높이 솟아 아무도 만질 수 없는 소나무가 아니다. 그분은 높이 솟아오르지 않고 넓게 퍼지는 포도나무이시다. 어떤 면에서 그분은 위대하고 광대하지만 또한 매우 낮으시다. 하늘로 높이 뻗으시는 것이 아니라 온 땅에 퍼지신다. 어린아이도 그분을 만질 수가 있다. 그분은 위대하고 넓지만 낮은 분이시다. 이것이 그분이 요한복음 15장에서 우리에게 말씀해주신 것이다.

요한 복음의 또 다른 곳에서는 그분이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11:25, 14:6). 그분은 나무이시고 생명이시며 이 두 문단을 함께 두면 생명 나무, 생명의 나무가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생명 나무이시다.

창세기 2장에 따르면 에덴 동산의 나무들은 먹기에 좋았다(9절). 생명 나무도 예외가 아니어 이 나무 또한 먹기에 좋았다. 우리는 우리자신을 목양하기 위해 모든 종류의 나무의 열매를 먹는다. 하지만 우리가 또다른 종류의 나무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가? 우리는 생명나무, 그리스도안에서 체현된 하나님이 필요하다. 그림이나 상징은 항상 천마디의 말보다 낫다. 이 상징에서 그리스도는 그분자신을 소나무가 아니라 우리 앞에 자신을 뻗으시는 포도나무로 보여주셨다. 이것은 우리가 그분을 먹어야 함을 나타낸다. 성경에서 첫 번째로 가장 중요한 상징은 생명이신 하나님 자신을 상징하는 생명의 나무이다. 우리는 그분을 생명 나무로 부를 수 있고 또한 하나님 나무라고도 부를 수 있다. 생명의 나무는 하나님의 나무이다. 우리는 반드시 이 생명의 나무가 하나님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 이 나무 없이는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이 생명 나무, 하나님 나무이심을 알 수 없다. (top)

(위트니스 리, 조성, 영문판 p.10-11)

사도 행전은 이 놀라운 분의 확장이다.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뻗어나가심이다. 이 그리스도는 한 분에서 수많은 사람들로 확장되었다. 그분은 한때 개인적인 그리스도였지만 사도행전에서는 단체적인 그리스도가 되셨다. 사도 행전뒤에는 서신서들이 있는데 이 서신서들은 이 놀랍고 우주적이고 위대한 사람에 대한 완전한 정의를 말해준다. 그리스도는 머리이고 교회는 몸이다. 이것은 우주적인 사람인 그리스도와 교회이다. 마지막으로, 신약의 완결인 계시록이 있다. 이 책은 그리스도의 몸, 개인적인 그리스도가 그분의 모든 지체들과 합병되어 새 예루살렘이 되는 완전한 그림을 보여준다. (top)

(위트니스 리, 조상과 신분, 영문판 p.9)

그리스도의 몸은 과정을 거쳐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의 유기체로서 그리스도안에 믿는이들인 많은 하나님 사람들이 외적 사람의 골격이며 생명 주는 영과 복합된 영이 신성한 본질이며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이며 무한하신 그리스도가 신성한 요소이고 만유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안에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신성한 근원이시다(엡4:4-6).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이러한 유기체는 외적 골격인 믿는 사람들과 그 영과 아들과 아버지의 삼일 하나님으로 조성되어 있다. 그 영은 본질이고 아들은 요소이고 아버지는 근원이다. 본질은 요소 안에 있다. (top)

(위트니스 리, 실제적인 길, 영문판 p.59-60)

우리가 선한 사람이던 악한 사람이던 간에, 우리는 제해져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아니요 생명 주는 영으로서 그리스도의 몸을 가져오는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신다. 자아-수련은(self-cultivation) 하나님의 경륜을 수행하지 않지만 자아-부인은(self-denial) 하나님의 경륜을 수행한다. 옛 창조 안에 있는 우리는 제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깨닫고 자신을 부인해야만 한다. 매일 매일 우리는 죽는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형상을 이루어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사시게 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안에서 영원한 목적인 새 예루살렘을 가져올 몸의 생활을 가져올 것이다. 이것은 신약 계시의 합당한 견식이다. 삼일 하나님,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 만유를 포함한 생명 주는 영인 이 위대한 셋은 그리스도의 몸을 산출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영으로서 그리스도안에있는 삼일 하나님의 참된 체현이시고 이 몸은 새 예루살렘에서 완결될 것이다. (top)

(위트니스 리, 야고보서 결정연구, 영문판 p.42)

그리스도의 몸은 한 영과 한 주와 한 하나님이신 만유의 아버지의 한 유일한 몸이다(엡4:3-6). 이 한 몸은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표현이다(1:23). 한 영은 한 몸의 본질이다. 삼일 하나님은 한 몸 안에서 그분 자신을 표현하시고 이 몸의 본질은 한 영이다. 한 주는 우리의 믿음과 침례의 대상이다. 우리는 그분 안으로 믿고 그분 안으로 침례 받았다. 지금 우리는 그분 안에 있다. 한 하나님이시자 만유의 아버지이시고 만유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하시고 만유안에 계시는 분은 생명의 근원이고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시다. 우리는 아버지에게로부터 나왔고 지금 그분은 우리의 경배의 유일한 대상이 되셔야 한다. 삼일성의 사상은 아버지가 만유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하시고 만유안에 계신 사실 안에 암시되어 있다. “만유 위에”는 주로 아버지를 나타내고 “만유를 통해”는 아들을 나타내고 “만유안에”는 그 영을 나타낸다. 한 영, 한 주, 한 하나님이시자 만유의 아버지이신 분은 몸의 바로 그 하나됨의 요소들이시다. (top)

(위트니스 리, 그리스도의 몸, 영문판 p.41)


교회 생활

외관상 구약은 교회와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인다. 사실상 구약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는 교회 생활의 그림이다. 우리는 출애굽기와 레위기와 민수기를 읽을 때 이러한 이해를 가져야만 한다. 만약 우리에게 이러한 관점이 있다면 우리는 출애굽기와 레위기와 민수기에 있는 신성한 계시 안에서 과정을 거치고 분배하시는 삼일 하나님의 체현인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스런 연합의 완전한 상징을 볼 것이다. (top)

(위트니스 리, 민수기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373)

그리스도에 대한 이상을 갖는 것은 그리스도가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시고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것의 중심임을 보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계획의 중심이시고 하나님의 영원한 의도의 중심이시다. 또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역사와 창조와 구속의 중심이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하시려고 계획한 모든 것의 중심이시다. 그리스도는 반드시 모든 것에서 으뜸의 위치를 가지셔야만 한다. 그리스도는 만유안에서 첫 번째 위치를 가지셔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그리스도를 우리의 삶과 사역과 교회생활에 적용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는 반드시 우리의 그리스도인 행함의 본질과 본체가 되셔야 하며 우리의 일과 봉사와 사역의 실제가 되셔야 한다. 우리의 사역은 그리스도가 충만한 그리스도의 사역이어야 한다. 더욱이, 그리스도는 반드시 교회 생활의 내용과 표현이셔야 한다. 교회는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표현 외에는 어떤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는 그러한 그리스도에 대한 이상을 가져야 한다. (top)

(위트니스 리, 하늘에 속한 이상, 영문판 p.26)

우리가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매일 누릴 때, 그분은 모든 것에서 우리의 내적 공급이 되신다. 그분은 우리 안에 있는 분배하심이 되신다. 결국, 그분은 우리의 집회와 봉사와 은사와 우리의 모든 활동들에서 나타나시게 된다. 이것은 우리의 집회와 봉사에서 우리의 공급이신 하나님의 분배하심이다. (top)

(위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과 분배, 영문판 p.67)

성육신 때부터 승천까지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는 많은 것들을 성취하셨고 달성하셨고 획득하셨다. 먼저, 그분은 그분 자신을 생명의 호흡으로 그분의 믿는이들 안으로 불어 넣으셨다. 그 후에 그분 자신을 능력의 영으로서 믿는이들 위에 쏟아 부으셨다. 그분 자신을 그들 안으로 호흡해 넣으심으로 그분은 그들을 그분의 몸의 지체들이 되게 하셨다. 그분 자신을 그들 위에 쏟아 부으심으로 그분의 몸이 되게 하셨다. 지금 우주 안에는 우주적인 사람이 있다. 머리는 하늘에 있고 몸은 이 땅 위에 있다. 머리와 몸은 서로서로 부합하고 협력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수행한다. 오늘날 생명이신 그분은 본질적으로 우리 안에 계시고 경륜 적인 능력으로 우리 위에 계신다. 지금 우리는 과정을 거친 삼일 하나님이신 생명을 살고 있고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신 그분의 경륜을 수행하고 있다. 이것이 교회 생활이다. (top)

(위트니스 리, 하나님의 신약 경륜, 영문판 p.110-111)


그리스도를 누림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누리신다. 주 예수님이 침례받으셨을때, 아버지는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기쁨, 누림, 만족임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분깃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만족케 하시고 행복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인 우리가 그분의 분깃이신 그리스도를 누리게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제사장들인 우리 모두다 같은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누린다. (top)

(위트니스 리, 민수기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192)

우리가 만약 이러한 교통 안에 머문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얻고 누리는 길을 얻게 될 것이다. 만약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진다면 우리는 즉시 누림을 잃어버릴 것이다. 이에 관하여 주 예수님은 거하라는 말을 하셨고 포도나무이신 그분 안에 우리가 거하는 것에 관해 말씀하셨다(요15:4). 포도나무는 하나님의 경작아래 있는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상징이다. 가지가 포도나무 안에 거하는 한은 교통이 있다. 하지만 가지가 포도나무 안에 거하지 않는다면 가지는 잘려 나가 황폐해지고 메마르며 포도나무의 풍성의 누림을 잃어버린다(5-6절). (top)

(위트니스 리, 사사기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51-52)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믿는이들로서 우리는 그분이 얻으신 것을 얻는다. 우리는 하나님을 얻고 그 영을 얻고 신성한 생명을 얻고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신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얻는다. 이것은 그리스도안에서 우리가 과정을 거쳐 완결된 삼일 하나님을 우리의 누림을 위한 전리품으로 얻는다는 것이다. (top)

(위트니스 리, 시편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330)

히브리서는 하늘에 계신 하늘의 그리스도를 강조한다(1:3). 그러한 그리스도에 관한 의의 말씀은 성숙한 자들을 위한 것이다(5:13-14). 이러한 말씀은 단단한 음식이고 우유와 같은 좋은 말씀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다. 우유와 단단한 음식 모두 다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신약 시대 안에 있는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안에있는 우리의 으뜸의 누림은 우유와 단단한 음식과 같다. 주의 회복 안에서 주된 것은 잃어버렸던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에 대한 누림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땅에서의 사역 안에서 그분을 누리고 그분의 만유를 포함한 인격과 만유를 포함한 일 안에서의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로서 그분을 누리는 하늘에서의 사역 안에서 또한 그분을 누린다. 우리는 그분의 땅에서의 일 안에서 그분을 보고 또한 하늘에서의 일 안에서도 그분을 본다. 이것은 신성한 누림, 영적 누림, 주된 누림, 신약시대의 최고의 누림이다. (top)

(위트니스 리, 신약 경륜, 영문판 p.116)

우리의 영안에서 내주하시는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는 누구도 다 써버릴 수 없는(골1:26-28, 2:2) 우리 안에 계신 하늘에 속한 비밀이다. 우리가 더욱 영안으로 우리 자신을 돌이켜 영안에 머무르며 주님을 접촉할수록, 우리는 더욱더 그분이 다함이 없는 분이라는 것을 느낄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영으로 돌이킬 때마다, 우리는 우리를 적시는 흐름과 솟아남을 느끼고 즉각적으로 다른 이들을 적실 것이다. 누구든지 우리를 접촉하는 이들은 이러한 산 흐름으로 적셔질 것이다. 이것이 생수로서 그리스도를 누리는 길이다. 이것은 교리가 아니다. 우리의 필요는 우리 자신을 영으로 돌이켜 영안에서 주님과 함께 머무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생수로 누릴 것이다. (top)

(위트니스 리, 우리의 분깃, 영문판 p. 29)


그리스도를 체험함

그분의 예비하심을 누리기 위하여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린 후에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모든 제물의 대치물과 모든 제물의 완성으로 주어졌다. 구약에는 많은 다양한 종류의 제물들이 있지만 오늘날 우리는 단 하나, 즉 만유를 포함한 제물-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을 갖는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두 번째 예비하심이고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는 세 번째의 신성한 예비하심이다.

우리의 실질적인 체험과 누림을 위하여 그리스도는 주로 세 가지 유형의 제물들-속죄제, 번제, 화목제-이 되신다. 하나님에 의해 기름발라진 사람들로서 우리는 우리의 속죄제이신 그리스도 위에 안수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자신을 드림을 통해 하나님의 예비하심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우리는 정죄를 느낀다. 양심 안에서 우리는 많은 것에 불의함을 느낀다. 우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가 결핍되어 있고 잘못되어 있으며 부정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럴 때 우리는 그리스도 위에 안수할 필요가 있으며 그분을 우리의 속죄제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마다 우리는 구속되고 화해되고 사함받아 안에 평강을 갖게 됨을 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살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할 수 없으며 우리 자신 안에서는 그분을 위해 살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우리가 안수한 바로 그분이 또한 우리의 번제이시다. 따라서 우리의 체험에 있어서 속죄제는 번제가 된다. 그럴 때 우리는 “오 주 예수여! 나는 당신을 위해 사는데 있어서 그리고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사는데 있어서 당신과 하나입니다.”라고 기도할 수 있다. 그리스도를 우리의 속죄제와 번제로 누린 후에 우리는 더 이상 정죄나 책망이나 송사가 없다. 그 대신 우리는 평강을 갖는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를 우리의 풍성한 화목제로 누린다. 그럴 때 이러한 평강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교통이 되며 그 안에서 우리와 하나님은 서로 그리스도를 누린다. (top)

(위트니스 리, 민수기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106-107)

이것은 구약의 예표에 따른 것이다. 어떤 이는 황소를 가져와 드릴 수 있고 다른 이는 가난하여 조그만 새 밖에 가져오지 못 할 수도 있다(레1:3, 14). 두 제물 다 그리스도의 예표이지만 한 분깃이 다른 것보다 클 뿐이다. 이것은 어떤 이의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이 다른 이들보다 크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완전한 지식은 우리의 체험을 위한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계시의 이해이다. 우리 모두는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체험할 필요가 있다. (top)

(위트니스 리, 내재적인 조망, 영문판 p.92)

도피성들(수20:1-9)은 부지중에 살인한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해 여호수아가 세운 것이다. 만일 그들이 피의 보수자에게서 도피성으로 피한다면(5절), 보호받을 수 있었다. 대제사장이 죽을 때 살인자는 해방되어 그의 성읍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6절).

도피성들은 우리가 죄인임을 깨달을 때 피할 수 있는 장소이신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표징 한다.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체현이신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표징 한다.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체현이신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는 우리가 보호받고, 덮여지고, 숨겨질 수 있는 도피성이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자이실 뿐 아니라 우리의 도피처이다. 죄의 “폭풍”이 올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도피처이신 그리스도께로 달려들어가 그분과 함께 머물 수 있다. 그런 다음, 대제사장의 죽음으로 표징된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해 우리 모두는 해방된다. (top)

(위트니스 리, 여호수아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 93)

이제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얼마나 많이 체험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주님을 유월절 어린 양으로, 만나로, 바위로, 성막 안에 있는 법궤로, 그리고 모든 제물, 즉 속건제, 속죄제, 화목제, 소제, 번제로 체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간시간마다 순간순간마다 그리스도를 이렇게 체험하고 누릴 때 우리는 자격을 얻고 강하게 되어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좋은 땅을 점령하는 것은 돌연히, 즉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점차적인 과정이다. 첫째, 주님을 어린 양으로 누려야 한다. 그 다음에는 만나로, 바위로, 성막에 있는 법궤로 누려야 한다. 또 그 다음에는 주님을 날마다 여러 가지 제물로 누려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만유를 포함한 땅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기고 장성할 것이다. 그러나 남은 단계가 있다. (top)

(위트니스 리,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 영문판 p.109)

우리는 그리스도의 중심성과 우주성-중심적인 분이시며 우주적인 분이신 그리스도-을 보았다. 더욱이, 우리는 그분이 만유를 포함한 분이시며 우리에게 주관적인 그리스도이심을 보았다. 한 면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만유를 포함하심-그분이 중심이시고 둘레이시며 모든 것이심-을 강조한다. 또 다른 면에서 우리는 이 중심적이고 우주적이고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너무나 주관적이심을 보기를 원한다. 만약 그분이 우리에게 주관적이시지 않다면 그분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고 우리는 우리에게 생명과 모든 것이신 그분을 체험할 수 없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중심성과 우주성과 같이 큰 주제에는 보아야 할 것이 많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교리 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관적인 것에 대한 주요 요점들에 집중하겠다. (top)

(위트니스 리, 중심성, 영문판 p.38)

우리의 체험에서, 살아 계신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계시다. 우리가 체험으로 돌이킬 때,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이 하나이심을 볼 것이다.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이신 우리의 영안에 내주하시는 생명 주는 영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신다. 우리는 반드시 순수한 방식으로 분명한 말씀을 믿어 성경이 말하는 것은 무엇이던 간에 “아멘”해야 하며 우리의 체험도 관심 해야 한다. 해석할 필요가 없다. 단지 성경이 말하는 것을 취해 믿어야 한다. (top)

(위트니스 리, 어떠한 이단인가, 영문판 p.35)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함께 영으로서 사람과 연합된 아들이다. 아들과 아버지와 그 영과 사람은 그리스도안에 있다. 신격의 모든 충만이 그분 안에 거하신다(골2:9). 아버지의 모든 충만은 아들 안에 있고 아들의 모든 충만은 그 영 안에 있고 그 영의 모든 충만은 사람 안에 있다. 이분이 우리가 믿는 바로 그 그리스도이시며 이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바로 그 그리스도이시다. 이분이 우리가 믿는 구주이시며 우리가 섬기는 주님이시고 우리가 경배하는 바로 그 하나님이시다. 이분이 우리에게 생명이신 그리스도이시다. 이 생명 안에서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과 사람을 갖고 있다.

여기 물 한 컵이 있다. 나중에 여기에 레몬 주스를 넣자. 그러면 이것은 더이상 물이 아니라 레몬 주스와 연합된 물이다. 그분이 성육신 하시기 전에 하나님은 단지 하나님이셨다. 하지만 그분의 성육신 후에 그분은 사람과 연합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분 안에는 신성외에도 사람의 본성과 사람의 본질과 사람의 요소가 있다. 우리의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 신성한 요소와 사람의 요소 모두를 갖고 계시다. 그분은 단지 삼일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사람이시다. 그분은 아버지, 아들, 그 영-삼일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시다. 그분은 모든 것이시다. 하나님으로서 그분은 창조주이시며 사람으로서 그분은 피조물이시다(골1:15). 그래서 그분 안에는 창조주와 피조물이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분이 어떠한 분이신지에 대해 말하는 데 다함이 없다는 것은 놀랍다. 창조주와 피조물이실 뿐 아니라 그분은 이 땅에서 삼십 삼 년 반 동안 인생을 통과하셨다. 그후에 죽음을 경험하고 사망을 정복하셨다. 그분은 죽음을 통과하시고 죽음에서 나오셨다. 그러므로 그분 안에는 그분의 만유를 포함한 죽음의 효능의 요소가 있다. 비록 사망이 무서운 것이지만, 그리스도의 죽음은 위대한 축복이며 위대한 석방이며 위대한 해방이다. 아담이 가져온 사망은 우리를 지옥으로 가게 하지만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를 지옥에서 건져낸다. 아담이 가져온 죽음은 우리에게 골치거리이지만 그리스도가 성취하고 통과한 죽음은 참된 해방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해 찬미해야 한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죽음이 있다는 것을 외치고 선포해야 한다.

더욱이, 그리스도의 죽음은 죽이는 능력, 죽이는 요소가 있다. 오늘날 어떤 약은 우리 몸에 있는 병균을 죽이고 우리의 몸을 보양하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죽이는 능력과 보양하는 공급이 있다. 죽이는 능력은 그분의 죽음의 효능의 요소이고 공급은 부활 생명이다. 사망은 죽이지만 부활은 공급한다. 죽음은 문제를 해결하지만 부활은 생명의 풍성한 예비하심으로 우리를 공급한다.

부활 후에 그리스도의 승천이 있다. 지금 그분은 하늘에 계시고 초월하셨다. 그분의 초월성 안에서 그분은 권위로 보좌에 앉으셨고 영광 받으셨다. 그리스도에게는 또한 왕국이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든 항목들을 절대로 다 써버릴수 없다. 이 위대한 “한 포의 약”안에는 창조주, 피조물, 사람의 본성, 인간 생활, 죽음의 효능, 부활, 승천, 보좌에 오르심, 영화롭게됨, 왕국이 있다. 이 위대한 한 포의 약은 그리스도 자신이다. 우리에게 생명이신 그리스도는 그러한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이시며 대단하시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 아버지, 그 영, 사람이시다. 모든 것이 그분과 함께 하고 그분 안에 있다. 우리는 그러한 완전한 방식으로 그분을 알아야만 한다. 우리가 날마다 그분을 우리의 생명으로 취할 때 이러한 모든 방면에서 그분을 체험할 것이다. (top)

(위트니스 리, 생명과 길, 영문판 p.39-41)

우리는 주님의 몸에 은사들이 되려는 열망을 가져야만 한다. 우리는 어떠한 직위나 직함에 야망을 가져서는 않된다. 사람들은 위대하고 부유해지고 직함을 원한다. 심지어 소위 하나님의 종이라 부르는 이들 중에서도 세상 적인 직함을 추구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누구누구 박사”라던가 “세계적인 전도자”라 불리기를 좋아한다. 어떤 전도자들은 심지어 명예 학위까지 받기도 한다. 우리는 이 문제에서 우리 자신들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여러분은 기꺼이 작고 낮아지고 가난해질 수 있는가? 기꺼이 반대와 핍박을 견딜 수 있는가? 기꺼이 숨겨지고 묻혀지고 이름이 나지 않을 수 있는가? 주님이 이 땅위에 계셨을 때, 인생 안에서 그분은 기꺼이 낮추시고 가난하시고 묻히셨다. 그분은 기꺼이 반대와 핍박을 감당하셨다. 그분은 결코 그분 자신을 위해 명예를 구하지 않으셨다. 만약 우리가 종교적인 세상과 기독교 세상에서 유명해지길 원한다면 이는 우리가 그분의 인생 안에서 그분에게 입지를 드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안에 계신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는 낮고 가난하고 겸손하고 제한되고 핍박받았던 이 땅에서의 인생의 요소들을 포함한다. 베드로와 바울과 같은 사도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빈곤과 반대와 핍박을 체험했다. (top)

(위트니스 리, 생명과 길, 영문판 p.85-86)

만약 여러분이 주님 앞에서 참되게 기도하고 여러분 자신을 그분께 다시 한 번 드린다면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에 대한 분명한 이상을 볼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죽고 장사지내는데 외에는 아무 쓸모도 없음을 보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깨달을 것이다. 항상 십자가에 놓여져 있고 십자가로 끝내는 느낌을 가질 것이다. 여러분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 외에는 쓸모가 없다.

동시에 여러분은 또한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가 여러분에게 너무나 실제적이어서 그분이 여러분 안에서 살아 역사 하시는 것에 대한 느낌과 새겨짐과 이해와 깨달음을 갖고 있다. 그러면 여러분은 생명과 빛과 생명의 법과 기름부음이신 그리스도의 실제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래서 날마다 날마다 항상 여러분 안에서 무언가 살아 있고 역사하고 행동하고 움직이고 빛 비추고 규제하는 것을 체험할 것이다. 여러분은 하늘에 있는 객관적인 그리스도가 아니라 여러분의 영과 마음 안에 있는 주관적인 그리스도와 어떻게 함께 해야 하는 지를 알게 될 것이다.

더욱이, 여러분이 그분과 하나라는 것을 항상 느낄 것이다. 여러분이 기도하는 동안, 그분은 여러분 안에서 기도하신다. 여러분이 행하는 동안, 그분은 여러분 안에서 행하신다. 여러분이 어느 곳에 가는 동안, 그분은 여러분 안에서 함께 가신다. 여러분은 항상 그분의 임재를 느낄 것인데 단지 여러분 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안에 계시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분이 얼마나 실제적이고 어디에나 계신지 깨달을 것이다. (top)

(위트니스 리, 생명과 길, 영문판 p.94-95)

우리는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에 대한 인상을 받아야 한다. 요한복음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고 창조주이시고 그분 안에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은 사람의 빛임을 보여준다(요1:1-4). 어느 날, 말씀이신 그분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육신이 되셨다(14절). 골로새서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며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며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으며 그분으로 되어있다고 한다(골1:15-17). 그리스도는 그분 안에서 우주 전체를 붙들고 계신다. 히브리서 1장 3절은 그분이 그분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신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너무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다. 지구가 태양에 너무 가까이 있다면 불타버릴 것이고 너무 멀리 있다면 얼어버릴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태양에 있어서 지구를 합당한 위치에 지키시는 책임을 가지신 분이다. 이러한 일을 하는 바로 그 그리스도가 또한 우리의 생명이시다. 만약 그분이 지구와 태양을 통제하신다면 그분은 우리도 통제하실 수 있고 우리의 부부관계 또한 통제하실수 있다. 우주를 붙드시고 만유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붙들고 계신다. 수많은 결혼이 이혼으로 끝나는 이유는 바퀴살만 있고 바퀴 축이 없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가 우리의 축이시다. (top)

(위트니스 리, 그리스도를 체험함, 영문판 119-120)

그리스도의 모든 어떠하심은 고갈되지 않는다. 그분 안에 창조주, 피조물, 창조, 신성한 본성, 인생과 함께한 인간 본성, 효능 있는 죽음, 부활, 영화롭게됨, 승천, 보좌에 오르심, 머리되심, 통치권, 권위와 왕국이 있다. 이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리스도 자신인 이 위대한 한 포의 약 안에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만약 우리가 매일 매일 그분을 우리의 생명과 체험으로 취한다면 우리는 많은 때 인성과 인생을 느낄 것이다. 많은 때 우리는 우리의 천연적인 생명을 죽음에 두는 죽이는 요소를 느낄 것이다. 많은 때 우리는 부활 생명, 해방하고 자유롭게 하고 솟아오르는 능력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가끔은 영화롭게됨, 보좌에 앉으심, 권위, 머리되심, 통치권,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다스리시는 왕국을 깨달을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이것을 주님께 가져가 기도해 그분이 이러한 것들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게 해야 한다. 우리는 단지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참된 계시가 필요하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가 그 안으로 믿는 그리스도가 그러한 그리스도이심을 보아야 한다. 그분은 사람과 연합된 삼일 하나님이시며 수많은 체험과 기능들을 갖고 계시다. 우리가 언급한 모든 요소들은 그분과 함께 그분 안에 있다. 그분은 모든 것이시며 모든 것을 갖고 계신다. 우리는 이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알 필요가 있다. 그런 후에 우리는 그분을 우리에게 생명과 모든 것인 분으로 날마다 체험할 길을 알 수 있다. (top)

(위트니스 리, 만유를 포함한 영, 영문판 p.13-14)

어느 날 어떤 형제가 내게 와서 그리스도인들이 농담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나는 “규율이 없습니다. 성경 안에 율법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그러한 율법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옳고 그른지에 관하여 감히 말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제가 반드시 말해야 합니다. 만약 형제님이 농담을 하시려면 형제님은 먼저 그리스도와 의논해야 합니다. 반드시 그분을 형제님의 생명으로 취하셔야 합니다. 만약 그리스도에 의해 농담하실 수 있다면 하십시오. 만약 농담할 때 그분이 형제님의 생명이시라면 그건 매우 옳은 것입니다. 형제님 자신은 그리스도가 형제님의 농담에 함께 하시는지 아닌지를 알 것입니다. 유일한 규칙은 그리스도 자신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오늘날 한 가지 율법, 한 가지 규칙, 한 가지 규율이 있다: 그리스도 자신, 부활 안에서 우리의 생명이신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이다. (top)

(위트니스 리, 주요 과정들, 영문판 p.33)

사람들을 소중히 품는 것은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기쁘게 하고 편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 반드시 기쁜 얼굴을 해야만 한다. 우리는 행복하고 기뻐해야 한다. 우리는 우울한 얼굴로 사람을 대해서는 않된다. 우리는 반드시 사람들에게 우리가 참으로 행복하고 기쁘다는 인상을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들을 소중히 품을 수 없고 기쁘게 할 수 없다.

그 다음에 우리는 그들을 목양해야 한다. 우리가 결혼이나 교제나 정치나 세계 정세나 교육에 관하여 할 때 우리는 사람들을 목양하지 않는다. 사람들을 목양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충만한 사역의 세 단계에 있는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로 그들을 먹이는 것이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에 관해 말할 때, 우리는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언어로 말해서는 않된다. 우리는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모든 이들에게 제시할 방법을 알아야 한다. 만약 누군가가 사람들에게 소고기를 먹이길 원한다면, 그는 사람들이 그것을 먹고 싶도록 요리하는 방법을 알아야만 한다. 같은 재료를 요리하는 많은 다른 방법이 있다. 나는 이 나라에서 삼십 삼년이 넘도록 삼천 개의 메세지로 그리스도를 요리해 왔다.

그리스도로 사람들을 목양하려면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를 추구하고 체험하고 얻고 누리고 함께 해야 한다. 특별히 빌립보서 2장과 3장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그가 어떻게 그리스도를 찾고 추구했는지 설명하려 다른 표현들과 구변들을 사용했다. 그는 우리가 원망과 시비 없이 모든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스도를 찾는 자매들은 원망하지 않는 것을 배워야 하고 형제들은 시비하지 않는 것을 배워야 한다. 만약 여러분이 원망하고 시비한다면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신 내주하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상하게 할 텐데 이는 이 하나님이 여러분 안에서 역사하사 여러분이 여러분의 구원을 이루게 하기 때문이다(2:12-14).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를 얻고 체험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얻는 것은 우리 자신의 매일의 유기적인 구원을 이루는 것이다. (top)

(위트니스 리, 활력 그룹, 영문판 p.102-103)

어떤 이는 아마 성경이 사람에게 모든 종류의 미덕들을 갖도록 가르치는지에 물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가 선을 행하길 원치 않으신다고 말 할 수 있는가? 우리가 겸손하며 양보해야 하지 않는가? 우리의 아내들을 사랑하며 우리의 남편들을 순종해야 하지 않는가? 확실히 성경은 이러한 모든 것들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생명 안에서 이러한 표현들의 근원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무엇이 본질인가? 금은 노랗고 놋도 노랗다. 겉으로 보기에 그 둘은 똑같아 보인다. 하지만 사실상 그 본질은 매우 다르다. 사람의 최고의 도덕성은 놋과 같이 참되지 않다. 그것은 표면적이며 뿌리 없는 나무나 근원 없는 물과 같다. 그리스도인의 미덕들은 표면적이지 않고 뿌리가 없는 것 같지 않다. 그리스도인의 미덕의 뿌리는 그리스도이다. 그분은 하늘과 땅의 주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죄로 인하여 죽으셨고 부활하셨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다해 그분 안으로 믿고 그분을 우리의 입으로 부른다면 그분은 우리의 영안으로 들어오셔 우리의 영을 살리신다. 이렇게 우리는 거듭난다. 우리의 인생에 더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하고 피조되지 않은 생명을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가 갖고 있는 똑같은 생명을 갖고 있으며 그리스도가 사신 것과 똑같은 삶을 산다. 지금, 이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사신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살고 그분을 확대할 때, 그분의 모든 인간 미덕은 우리의 삶을 통해 표현된다. 오직 그러한 미덕들만이 금처럼 참되고 높으며 고귀하다.

우리의 눈이 열려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생명이 되시고 우리가 그분을 살아내는 것임을 보기를 원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를 살고 그리스도를 확대하는 것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그분 안에서 죽었다. 지금은, 그분의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서 살고 계시다. 하나님은 “내”가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어 그분의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사시고 우리의 삶의 근원과 모든 것이 되기를 원하신다. 이로 인해 바울은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1:20상, 21하)고 말했다. (top)

(위트니스 리, 경륜과 분배, 영문판 p.37-38)

먼저, 우리는 그분의 인성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 안에서의 삼중의 씨인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와 동일시되어 그분과 하나되고 심지어는 한 영 되어야만 한다(롬6:3-5, 엡2:6, 고전6:17).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삼일 하나님과 하나된다. (top)

(위트니스 리, 중심 노선, 영문판 p.102)

만유를 포함한 생명 주는 영이시며 하나님의 완전한 복음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축복의 총체인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체험하고 누리는 길은 먼저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를 계시하시는 것이다(갈1:16상). 하나님의 계시를 떠나서는 아무도, 심지어는 바울조차도, 길이 없다. 바울은 예전에 그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그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다고 말했다(14절).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항하여 그의 조상들의 유전을 위해 절대적으로 싸웠다. 어느 날 그는 예수의 추종자들을 결박해 대제사장 앞으로 끌고가 형을 받게 하려고 예루살렘에서 다메섹으로 향했다. 그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춰 그가 땅에 엎드러지니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는 소리가 들려왔다(행9:3-4). 이것은 그를 놀라게 했다. 그는 이 땅위에 있는 예수의 추종자들을 핍박하는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 하늘에서 음성이 들릴수 있는가? 바울은 대답하고 즉각적으로 이 분을 “주님”이라고 불렀다. “주여 뉘시오니이까?”(5절) 바울은 이 분이 누구인지 몰랐지만 “주님”이라고 불렀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라는 말씀 때문에 그는 이렇게 구원을 받았다. 주님은 바울에게, “나는 예수라”고 대답하셨다. 그 때부터 바울안에서 계시가 비추기 시작했다. 그는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를 받았고 또한 이 분을 다른 이들에게 전파하고 사역하고 드릴 부담도 받았다. (top)

(위트니스 리, 중심 노선, 영문판 p.151)

요한복음에서 우리는 그분 안으로 믿어 그분을 부활과 생명으로 취하여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체험하고 누려 영원히 산다. 요한복음 11장 25절에서 주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구절을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이 구절에 따라 그리스도를 체험하기는 매우 쉽다. 만약 여러분이 주님께 “당신이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믿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즉시 여러분은 모든 상황에서 영원한 생명을 살 것이다. 아내와 다투기 전에 이런 기도를 반복한다면 당신은 부활 생명을 살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화를 내고 육체 안에 있게 될 것이다. 그러한 기도를 할 때 여러분은 육에서 나와 또 다른 영역인 영원한 생명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것은 미신이나 심리학이 아니다. 공자의 많은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매우 사랑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아내를 합당하게 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주 예수여, 당신이 부활이요 생명입니다”라고 말하고 돌아서서 자기의 부인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는 그리스도가 살아 있고 실제적인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그분은 단지 생명일 뿐만 아니라 사망을 이긴 생명이시다. 그분은 부활이시다. 그분은 살아 계시고 능력 있으시다. 그분의 이름을 언급한다면, 즉시 여러분은 그분에 의해 “전기가 통하게되어”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그분을 부르고 그분께 말하고 그분께 기도함으로 여러분은 그분을 체험하고 누릴 것이다. 체험이 있는 많은 형제 자매님들이 하루에 수없이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른 누림에 대한 찬송을 만들었다(169장, 65장). 주의 이름을 하루에 천 번 부르는 것이나 매 순간 부르는 것은 너무 많이 부르는 것이 아니다. 그분을 부름으로 우리는 그분을 누린다. (top)

(위트니스 리, 중심 노선, 영문판 p.178-179)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체험하고 누리는 길은 포도나무의 거하는 가지처럼 그분의 어떠하심의 모든 풍성을 누리는 것이다(15:4-5). 우리는 포도나무의 가지들로 타고나지는 않았지만 접붙임을 통해 포도나무의 가지들이 되었다(롬11:17). 우리가 만약 그분 안에 가지로서 거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어떠하심의 모든 풍성들을 누릴 것이다. 참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안으로 접붙여진 돌나무의 가지들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있는 것은 무엇이든 누릴 수 있는 위치와 자격과 권리가 있다. 그러므로 이런 거함은 그리스도의 풍성들을 누릴 수 있는 길이다. 그리스도를 호흡하고 먹고 마신 후에 우리는 접붙여진 가지로서 그분 안에 거하여 그분의 모든 풍성을 흡수한다. (top)

(위트니스 리, 중심 노선, 영문판 p.189-190)

뛰어나신 그리스도(빌3:8-14)를 얻도록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체험하고 누리는 또 다른 길이다. 그리스도는 단지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일뿐 아니라 뛰어난 그리스도이시다. 가끔 우리의 삶과 행동은 좋지만 뛰어나지는 않다. 우리는 뛰어나신 그리스도를 누림으로 뛰어나야만 한다. 뛰어나신 그리스도를 갖고 뛰어나신 그리스도를 사는 것은 그분을 추구하는 것이다. 바울은 그가 그리스도를 추구했다고 말했다(12절). 추구하다(pursue)는 단어의 헬라어는 핍박하다(persecute)와도 같다. 그가 사울이었을 때, 바울은 그리스도를 핍박했고 그가 구원받은 후 바울은 그리스도를 추구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핍박”해 그분이 무언가를 하시게하고 그분을 놓아주지 말아야 한다.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했다(창32:24-30). 그는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도록 강요해서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고 야곱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왕자가 되었다. 우리는 반드시 항상 순종적이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고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을 이룸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시도록 강요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모든 진리는 한 방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사복음서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네 가지 전기들은 그분을 네 다른 방식, 왕(마태복음), 노예(마가복음), 사람(누가복음), 하나님(요한복음)으로 보여준다. 한 면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던 고난을 견디고 주권의 주님을 경배하며 순복하는 것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다른 면에서,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영을 사용해 주님께 명령해야 한다. 우리는 아마도 “주여, 우리는 너무나 열매가 없습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도록 주님께 명령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리는 많은 방법 중 하나이다. (top)

(위트니스 리, 중심 노선, 영문판 p.212)

히브리서 6장 4절은 믿는이들이 성령의 참예한 바 되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놀라운 인격의 참예자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성령은 아버지와 함께한 아들로서 삼일 하나님의 완결이다. 우리는 그러한 분의 참예자다. 우리는 성령을 받았을 뿐만이 아니라 지금은 성령의 참예자이다. 우리가 성령을 갖고있는한, 우리는 그분의 참예자이다. 그분은 아주 귀중한 보물이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안에있는 믿는이들이 천사나 모세나 아론이나 옛 언약보다 훨씬 더 소중한 보물이신 이 놀라운 분을 갖고 있음을 유대인 믿는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여졌다. 이 보물은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이다. 그러나 우리의 실제적인 체험에서 이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는 만유를 포함한 영이다. 히브리서는 우리가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참예자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가 성령의 참예자라고 말한다. 그 영은 삼일 하나님의 완결이고 그 영은 삼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도달하심이다. 그 영이 되시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우리에게 도달할 수 없다. 그 영이 되시지 않았다면 아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도달할 수 없다. 삼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도달하시는 것은 삼일 하나님의 완결이신 그 영이다. 이 영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나고 아론보다도 훨씬 뛰어나고 그분은 옛 언약보다 훨씬 뛰어난 새 언약의 실제이시다. 우리는 이 영의 참예자다. 우리가 이 영의 참예자인한 우리는 그분의 모든 풍성과 함께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에 참예하고 그분을 누린다. (top)

(위트니스 리, 신약 경륜, 영문판 p.195-196)

어떤 이는 아마 성경이 사람에게 모든 종류의 미덕들을 갖도록 가르치는지 물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가 선을 행하길 원치 않으신다고 말 할 수 있는가? 우리가 겸손하며 양보해야 하지 않는가? 우리의 아내들을 사랑하며 우리의 남편들을 순종해야 하지 않는가? 확실히 성경은 이러한 모든 것들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생명 안에서 이러한 표현들의 근원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무엇이 본질인가? 금은 노랗고 놋도 노랗다. 겉으로 보기에 그 둘은 똑같아 보인다. 하지만 사실상 그 본질은 매우 다르다. 사람의 최고의 도덕성은 놋과 같이 참되지 않다. 그것은 표면적이며 뿌리 없는 나무나 근원 없는 물과 같다. 그리스도인의 미덕들은 표면적이지 않고 뿌리가 없는 것 같지 않다. 그리스도인의 미덕의 뿌리는 그리스도이다. 그분은 하늘과 땅의 주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죄로 인하여 죽으셨고 부활하셨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다해 그분 안으로 믿고 그분을 우리의 입으로 부른다면 그분은 우리의 영안으로 들어오셔 우리의 영을 살리신다. 이렇게 우리는 거듭난다. 우리의 인생에 더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하고 피조되지 않은 생명을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가 갖고 있는 똑같은 생명을 갖고 있으며 그리스도가 사신 것과 똑같은 삶을 산다. 지금, 이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사신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살고 그분을 확대할 때, 그분의 모든 인간 미덕은 우리의 삶을 통해 표현된다. 오직 그러한 미덕들만이 금처럼 참되고 높으며 고귀하다.

우리의 눈이 열려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생명이 되시고 우리가 그분을 살아내는 것임을 보기를 원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를 살고 그리스도를 확대하는 것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그분 안에서 죽었다. 지금은, 그분의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서 살고 계시다. 하나님은 “내”가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어 그분의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사시고 우리의 삶의 근원과 모든 것이 되기를 원하신다. 이로 인해 바울은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1:20상, 21하)고 말했다. (top)

(위트니스 리, 경륜과 분배, 영문판 p.37-38)

이 메세지와 다음 메세지에서는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에 관한 요점들을 더 보기 원한다. 이 요점들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이 세 부분들은 주로 우리가 신성한 삼일성에 참여함에 따른것이다. 첫 번째 부분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요1:1) 그분의 존재 안에서 생수의 샘(4:14)이 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신데 이는 그분 자신이 우리 안에 흐르시는 삼일 하나님으로 분배하여 생수의 샘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신다. 이 부분은 요한복음 1장부터 4장에서 다룬다. 요한복음 1장은 하나님(1절), 말씀(1, 14절), 말씀 안에 있는 생명(4절 a), 하나님을 비추는 생명의 빛(4절 하반부), 육신(14절 a), 하나님의 선민 중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거처인 장막(14절 b)으로 하나님을 보여주며 어린양(29절), 그 영(32절), 집, 사닥다리(51절)의 네 항목이 한 그룹이다. 어린양은 구속을 위해 있다. 그 영은 생명을 주고 변화시킨다. 그 후 변화 받은 돌들은 새 예루살렘 안에서 완결될 참 벧엘인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교회와 그리스도의 몸안으로 함께 건축된다. 하나님의 집은 그리스도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닥다리가 되시기 위한 기초이다.

요한복음 2장에서 그리스도는 그리스도 자신과 그분의 모든 믿는이들을 조성요소로 함께 건축된 하나님의 전이시다(19-21절). 요한복음 3장에서 그분은 뱀(14절), 영원한 생명(15-16, 36절), 신랑, 증가하신 그리스도(29-30절)이시다. 요한복음 4장에서 그분은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해주고 우리를 만족시키며 기쁘게 하고 우리의 기쁨이 되는 생수의 샘이시다(14절).

두 번째 부분, 누림의 부분에서 그리스도는 유월절이시며 초막절이시다. 이러한 명절의 부분 후에 그분은 우리를 외적으로 돌보시는 목자이시며(10:11, 14, 16) 우리를 내적으로 위로하시고 소중히 품는 보혜사, 변호자이시다(14:16-17). 결국, 이 오시는 영은 모든 그리스도의 믿는이들에게 호홉되어지는 생명의 영이 되신다(20:22).

요한복음이라는 광대한 밭에는 그리스도에 관한 다른 항목들도 있다. 이러한 “이삭”들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하나님을 선포하고 표현했으며(1:18)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메시아, 그리스도로 그분의 위임을 수행하신 것이다(41절). 그분은 구속하는 어린양이시며 생명을 분배하는 영이시고 집과 사닥다리이심으로 하나님의 위임을 수행하셨다.

그리스도는 또한 인자이시다(51절). 야곱은 꿈에서 천사들이 사닥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았다(창28:12). 주님이 그 꿈을 언급하셨을 때 그분은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함을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은 신성 안에서 하나님을 선포하고 표현한다. 그러나 하늘과 땅을 함께 연결하는 사닥다리는 인성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인자의 사역이다. 오늘날, 그분의 부활 후에도 그리스도는 여전히 인자이시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에게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말씀하셨고(마26:64) 스데반은 그가 핍박받을 때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말했다(행7:56). 요한이 대제사장으로서 등대들을 돌보는 그리스도를 보았을 때, 그분은 인자와 같았다(계1:13). 영원토록 주 예수님은 인자이실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 교사들이 그분이 하나님-사람이 되신 것은 보았지만 그분이 또한 사람-하나님, 인성 안에 있는 하나님, 인자이신 하나님이 되신 것은 보지 못했다. 영원부터 주 예수님은 인자로서 하늘과 땅의 부담을 짊어지는 우주적이고 확고하고 강한 사닥다리가 될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그리스도의 또다른 이삭들은 은혜(우리가 누린 하나님)와 실제(진리, 우리가 깨닫고 얻은 하나님)를 포함한다. 요한복음 1장 14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은혜와 진리(실제)가 충만하다고 했다. 17절은 은혜와 진리(실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왔다고 했다. 그리스도는 2장에서 사망을 생명으로(물에서 포도주로) 바꿀 수 있는 창조주이시기도 하다. 새 포도주로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기쁨과 우리의 만족을 위해 우리를 감동시키신다. 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풍성들은 다함이 없다. (top)

(위트니스 리, 요한복음 결정 연구, 영문판 p.68-69)


음 식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음식은 또한 우리의 음식이 된다. 우리가 주의 깊게 레위기를 읽어본다면, 우리는 번제가 전적으로 그리고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만족을 위해 태워져야 한다는 것을 볼 것이다. 번제의 어떤 부분도 그것을 드린 사람이 먹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번제는 소제와 수반되는데 소제는 상당 부분이 드리는 자를 위한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음식으로 그분께 드리면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신다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너는 나의 음식으로 나를 섬기는데 이제 나는 이 음식의 일부를 너와 나누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누린다. 우리가 잔치하고 있을 때 하나님 또한 잔치하신다. 그분은 우리와 잔치하시며 우리는 그분과 잔치한다. 상호적으로 우리와 하나님은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에 대하여 서로 잔치한다. (top)

(위트니스 리, 민수기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293)


하나님의 경륜

다음으로, 시편기자들은 그들의 하나님에 대한 무지한 추구 안에서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성경 독자들에게 사역한다. 단지 율법에서 그리스도께로 돌이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중심과 둘레, 바퀴축과 바큇살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 안에서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라는 뜻이다. 그분은 중심성이시며 또한 우주성이시다. 우리는 시편을 추구해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 안에 있는 이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에 대해 상세히 알 필요가 있다. (top)

(위트니스 리, 욥기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196)

사무엘 하 7장은 신약에서 교회가 그분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 자신으로 인해 건축될 것임을 예언하는 신언이다. 그리스도는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시는 분이시다. 그리스도는 또한 요소로서 그 안에서 그것으로 하나님의 집인 교회가 건축된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다윗, 지금까지 너는 여전히 공허하고 비어 있다. 너는 나를 위한 집을 짓기 위하여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너는 내가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이신 내 자신을 네 안으로 건축하는 것이 필요함을 보아야 한다. 그럴 때 너는 집을 가질 것이고 그 집은 또한 나의 집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 같다.

사무엘 하 7장의 내재적인 의미는 삼일 하나님이 과정을 거치고 완결되신 그분의 삼일성 안에서 그분 자신을 그분의 선택된 사람들 안으로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무엘 하 7장은 우리를 그분의 거처(교회와 함께 하는 그리스도)로 삼고 씨(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산출하기 위해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역사하고 계신 삼일 하나님에 관한 장이다. 그리스도는 집이요 그리스도는 또한 씨이시다. 그리스도는 요소이시며, 그리스도는 또한 산출이시다. 그리스도는 모든 것이시다. (top)

(위트니스 리, 사무엘 상ㆍ하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163-164)

위의 요점 모두 다 구약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 안에서와 그것을 위한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생생한 그림을 보여준다. 예표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중심성과 우주성이시며 하나님의 모든 선민에게 신성한 축복이심을 보았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모든 선민이 취하고 소유하고 기업으로 받고 왕의 신분 정도로까지 극도로 누리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좋은 땅임을 보았다. 시가서에서는 삼일 하나님이 하나님-사람이 되셔 새 하늘과 새 땅을 완결할 그분의 영원한 경륜의 성취를 위해 그분의 완전한 구속을 이루셨음을 볼 수 있다. (top)

(위트니스 리, 삼일 하나님의 계시, 영문판 p.13-14)

이제 우리는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가 인간 역사로 완전히 감싸져 있음을 볼 것이다. 아담에으로부터 인간 족속의 마지막 사람까지의 인간 역사는 그리스도가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륜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인간 역사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이는 다니엘서 2장에 나온 한 큰 신상으로 상징된 네 제국의 중요한 방면 모두로 감싸져 있다는 의미이다. 스가랴서 9-14장에서는 정교하고 특별하고 심지어는 특별한 방식으로 인간 역사와 관련된 그리스도를 보여준다. (top)

(위트니스 리, 스가랴서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52)

우리는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인격과 역사에 관한 신성한 계시의 세 번째 주요 항목을 보았다(엡1:23). 성경에 계시된 그리스도는 만유를 포함한 분이시다. 에베소서 1장 23절은 그리스도가 만유안에서 만유를 충만케 하시는 분이라고 말한다. 이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는 만유 위에 가장 뛰어난 분과 만유안에서 만유를 충만케 하시는 분으로서 하나님의 경륜의 중심과 둘레이시다. 성육신과 삼십 삼 년 반의 인생과 만유를 포함한 죽음과 모든 것을 정복하는 부활과 모든 것을 초월하는 승천을 통하여 그분은 그분 자신을 믿는이들 안으로 분배해 그들이 거듭나고 거룩하게 되고 새롭게 되고 변화 받게 하고 하나님의 맏아들의 형상, 그리스도의 형상, 첫 번째 하나님 사람의 형상을 이루게 하여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으로 그들을 영화롭게 하신다. 그들은 많은 하나님-사람들이 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조성하고 이는 영원토록 인성 안에서 하나님의 확장과 표현으로서의 새 예루살렘을 완결한다. (top)

(위트니스 리, 연결의 결과, 영문판 p.78-79)

성경 전체는 구약과 신약으로 되어 있다. 구약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계시-하나님, 그리스도, 만유를 포함하고 복합적이고 완결된 영-는 설명과 신약의 실제 없이는 희미하다. 매리 맥도너(Mary McDonough)는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 이라는 놀라운 명작을 썼다. 그녀와 다른 이들은 경륜이란 단어 대신에 계획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경륜이란 단어는 구약에서 언급한 적이 없지만 신약에서 사도 바울이 사용하였다(엡1:10, 3:9, 딤전1:4-고린도 전서 9:17에서 사용한 것과 같은 헬라어 단어, 엡3:2, 골1:25). 하나님의 신약 경륜은 오직 한 인격-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만을 다룬다. 그분은 두 신분을 갖고 계시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다른 하나는 인자이시다. 신약 경륜은 우리에게 신성한 삼일성이신 바로 그 하나님을 보여준다. (top)

(위트니스 리, 활력 그룹, 영문판 p.80)


하나님의 계획

삼 천 오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기록을 통해 비록 하나님이 그들을 좋은 땅으로 인도하신 것이 그들을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모든 것이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성취하고 수행하기 위한 것임을 볼 수 있다. (top)

(위트니스 리, 민수기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149-150)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은 복잡하다. 그분은 만유를 포함하시는데 이는 그분이 아주 많은 항목이시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는 역사와 정치와 행정권과 아주 밀접히 관계되어 있다. 그러한 분을 어떻게 우리가 이해하겠는가? 유일한 길은 읽고 추구한 후에 우리 자신을 기도에 내어 드리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는 영을 사용한다. 그 순간, 그리스도는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주입하신다. 이것이 하늘에 속한 신성한 분배이다. 이러한 분배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과 빛과 인내와 사랑과 모든 것으로 받는다. (top)

(위트니스 리, 스가랴서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69)


좋은 땅

신명기의 중심 사상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지도자와 인도자로서 그들이 하늘에 속한 영토로 들어가 그분의 풍성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신명기에 있는 매 단어가 우리에게 생명 공급이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으로 유지되었다. 이것은 사실상 그들이 그리스도로 유지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우리가 이미 지적했듯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무엇이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한 면에서 그리스도는 좋은 땅이시고 또 다른 면에서 그분은 좋은 땅으로 가는 우리를 유지시켜 주는 음식이다. 그분은 좋은 땅으로 들어갈 수 있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가 스스로 들어가도록 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우리가 그리스도로 인해 좋은 땅으로 들어가도록 인도하시며 그분은 또한 그리스도로 우리를 유지시키시는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이시다. 이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그분 자신 안으로 들어가도록 유지시키심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좋은 땅인 동시에 우리를 유지시키는 음식임을 말해주는 신명기안에 있는 계시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지도자와 인도자로서 그리스도는 그들이 하늘에 속한 영토로 들어가 그분의 풍성에 참여하도록 하셨다. 이 하늘에 속한 영토는 그리스도 자신이시고 풍성은 신명기 8장 7-9절에 묘사된(그 곳은 골짜기에든지 산지에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들의 나무와 꿀의 소산지라...철이요..동을 캘 것이라) 좋은 땅으로서의 그리스도의 풍성들이다. 골짜기와 산들은 흐르는 영으로서 우리가 체험하는 그리스도안에서의 여러 종류의 상황들을 나타낸다. 좋은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데 이는 동물 생명과 식물 생명의 혼합의 산출물들이다. 철과 동은 적과 싸울 수 있는 무기를 만드는데 쓰인다.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의 풍성에 대해 자세히 보려면 1962년 미국에서 처음 열린 특별집회 기간 동안의 메세지들을 모아놓은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읽을 수 있다.) 그리스도는 모든 것-물, 음식, 무기, 땅이시다. (top)

(위트니스 리, 신명기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7-8)

이 시점에서 나는 좋은 땅 곧 가나안 땅의 영적인 의미에 대하여 한 마디 말하고 싶다. 내가 처음에 주의 회복을 가지고 이 나라에 보내어졌을 때 로스 앤젤레스의 첫 번째 집회에서 나는 주로 신명기 8장 7절부터 10절까지에 근거하여 일련의 메시지를 주었는데, 그것은 후에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그 메시지들에서 나는 좋은 땅이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에 대한 그림임을 지적했다. 좋은 땅은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의 체현인 한 인격을 예표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 체현 되신 하나님은 삼일 하나님으로 과정을 거쳐 한 인격 예수 그리스도 안에 최종 완성되었다.

성경은 놀라운 책이다. 그것은 여러 가지 다양한 종류의 글과 주제를 담고 있다. 사실상 온 성경은 한 가지 문제를 담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주 안에 유일한 분인 한 인격 안에 체현 되기를 갈망하신다는 것이다. 이 놀라운 인격에 대하여는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나님과 사람이 이 인격 안에 있다. 그분은 신성한 본성의 모든 요소와 속성 및 사람의 본성의 모든 미덕을 가지고 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신성한 본성과 사람의 본성 둘 모두의 실제를 갖는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또한 생명과 빛과 그 영을 갖는다. 우주 안에 있는 모든 적극적인 것들은 우주의 중심과 의미이신 이 한 분 인격이신 만유를 포함한 하나님 사람 안에 체현 되어 있고, 담겨져 있고, 실제화 되어 있다. (top)

(위트니스 리, 민수기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144)

이스라엘 백성이 구약에서 체험했던 것은 우리에게 신약 시대의 실제를 가리키는 그림과 예표와 상징과 그림자이다(고전10:6, 11).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간 가나안땅은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예표이다(골1:12).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해 가나안 땅으로 옮겨 그분을 경배하고 섬기게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과 사탄의 어두움의 권세에서 나와 그리스도안으로 옮기셨다는 것이다(13절).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행하고 살고 일하며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한다(2:6).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었을 때 그들은 유월절 어린양을 먹었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예표로서 그분에 대한 우리의 체험의 시작이다(고전5:7). 우리가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은 구속하는 어린양으로서 그분을 체험함으로 시작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방황하고 여행하는 동안 그들에게는 매일의 만나와 생수가 흐르는 반석이 있었다(고전10:3-4). 이는 그리스도에 관한 한 층 더 전진한 예표들이다. 우리가 구속하는 어린양으로서 그리스도를 체험한 후에 우리는 날마다 그분을 매일의 만나와 산 반석으로 누린다. 후에는 성막과 모든 기구들도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의 다른 방면의 예표들이다. 오늘날 우리는 성막과 다른 기구들로 예표된 다른 방면에서의 그리스도를 누리고 체험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간 후에 만나는 멈췄고 그들은 그 땅의 소산물을 먹어야 했다(수5:12).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그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땅에서 취했다. 이 땅에서 난 소산물들을 먹었고 이 땅에서 난 무언가를 마셨고 심지어는 이 땅에서 그리고 이 땅위에서 집을 지었다. 그들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은 이 땅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좋은 땅은 그리스도의 만유를 포함한 예표로서 즉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만유를 포함한 방식으로 모든것이시다. (top)

(위트니스 리, 생명과 길, 영문판 p.123-124)

이스라엘 백성들은 좋은 땅에서 수고해야만 드릴 것이 있었다. 좋은 땅은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좋은 땅으로 이끌려 졌고 좋은 땅은 그들의 특별한 분깃으로 그들에게 할당되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할당된” 분깃으로 주셨다. 골로새서 1장 12절은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한다. 골로새서는 가나안 땅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업이었던 것처럼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기업이신 분깃임을 보여준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분깃이 있다. (top)

(위트니스 리, 교회의 내용, 영문판 p.30)

출애굽기 3장 8절은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려 하노라”고 말한다. 좋은 땅은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이 그리스도와 함께 젖이 흐른다. 이스라엘 자손이 좋은 땅에 들어가 젖을 마시기 전에 그들은 또한 반석이신 그리스도에게서 흘러나온 물을 마셨다(출17:6, 고전10:4). 계시록 22장에서 우리는 새 예루살렘 안에는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흐르는 강이 있음을 볼 수 있다. 만약 이 구절들을 다 한데 놓으면 우리는 오늘날 우리의 하나님으로부터 무언가가 흘러 우리의 갈증을 해소하고 공급하고 만족케 하심을 볼 수 있다. 젖이던 생수던간에 이것은 하나님의 존재로부터 흘러나와 우리를 공급한다. 그러므로 고린도 전서 12장 13절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 자신인(요4:24) 한 영을 마신다고 한다. 우리가 그 영을 마실 때 우리는 하나님을 마신다. 우리의 하나님은 너무 부요하여 한 가지 예표나 상징으로는 그분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성경은 다른 예표들과 상징을 사용하여 그분의 풍성의 여러 방면들을 보여준다. 젖과 생수 모두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풍성하신 지를 보여준다. 각 경우의 원칙은 동일하다. 그분의 신성한 존재의 풍성들은 은혜로서 우리의 공급이 되어 우리가 그분의 목적을 이루게 한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으르부터 흐르는 풍성한 공급을 마셔 신성한 목적을 이루어야 한다. (top)

(위트니스 리, 창세기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645-646)

앞으로 우리는 가나안 땅에 대한 것을 보기로 한다. 그것은 가나안 땅이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예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 이 가나안 땅 위로 건축되는 도시와 성전이 그리스도의 충만함, 즉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예표임도 보기로 한다. 우리가 깊이 생각할 것은 바로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이다. 이는 그리스도로부터 나와, 그리스도 위에, 그리스도의 충만함인 교회가 건축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그리스도와 교회가 아닌,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와 그의 몸, 즉 그리스도의 충만함인 교회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top)

(위트니스 리,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 영문판 p.7)

이 땅은 무엇인가? 결코 잊지 말라. 이 땅은 곧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이시다. 단지 “그리스도”가 아닌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이다. 만약 내가 여러분에게 그리스도가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여러분은 “오, 주님을 찬양합니다. 나는 그분을 모시고 있습니다. 내게는 그리스도가 있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이 어떠한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는가를 묻고 싶다. 여러분의 경험에서는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가 아닌 적은 분량의 그리스도, 즉 부족한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지는 않은가? (top)

(위트니스 리,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 영문판 p.13)

나는 구원받은 지 1, 2년 후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에서 즐겼던 만나도 역시 그리스도의 예표임을 배웠다. 나는 참으로 즐거웠다. “주님, 당신은 나의 양식입니다. 당신은 나의 어린양일 뿐만 아니라 매일매일의 만나입니다.”라고 외쳤다. 그러나 만나가 하나님의 목적이요 목표인가?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출한 것은 광야에서 만나를 누리게 하기 위함이었던가? 아니다. 그 땅이 목적이요, 그 땅이 목표이다. 나는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땅으로 누리는지 의문스럽다.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여러분 자신도 그 점에 대해 의문스러울 것이다. 여러분은 어린양을 유월절로, 또 주님을 매일매일의 만나로 누린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땅으로 누린다고 하는 사람은 정말로 극소수이다.

골로새서 2장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았다고 말한다. 이제 나는 여러분이 다음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기를 원한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았다면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다. 그리스도가 땅이요, 그리스도가 바로 흙이다. 식물이나 나무는 흙 속에, 땅 속에 뿌리를 박는다. 그와 같이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았다. 나는 여러분이, 그리스도가 바로 여러분의 흙이자 땅임을 깨닫지 못했을까 염려된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자신인 이 땅에 뿌리 박는 하나의 어린 식물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오륙 년 전에만 해도 나는 결코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성경 말씀을 읽었고 골로새서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골로새서를 읽고 또 읽었지만 결코 이러한 빛을 얻지 못했다. 그리스도가 나의 흙이요 나의 땅이라는 것을 결코 알지 못했다. 지난 이삼 년 전에야 비로소 내 눈이 열려졌던 것이다.

주님의 자녀들의 대부분은 아직도 애굽에 남아 있는 것을 깊이 느끼게 된다. 그들은 단지 유월절을 경험하고 주님을 어린 양으로 먹을 뿐이다. 그들은 어린양에 의해 구원을 받았지만 이 세상에서 구출되지는 않았다. 또 몇몇 사람은 애굽에서 나왔다. 그 사람들은 이 세상으로부터 구출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광야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좀더 많이 누리고 그리스도를 매일매일의 만나로 누리며, 주님을 그들의 양식으로 누려 대단히 만족하다고 자랑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형제 자매들이여, 정말 이것으로 족한가? 그리스도를 매일매일의 만나로 누리는 사람들을 만날 때 우리는 참으로 기쁘다. “오, 주님을 찬양합니다! 여기 날마다 실제로 주님을 그들의 만나로 누리는 형제 자매들이 있구나!”라고 말하지만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목적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목적은 단지 우리가 그리스도를 조금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만유를 포함한 분이 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골2:6)라는 말씀을 보라. 그는 우리가 그 안에서 걸어야 할 활동의 범위요, 한계이다. 그리스도는 양식이나 음료일 뿐 아니라 걸어 갈 수 있는 한계요 땅이다. 우리는 그의 안에서 걸어가야 한다. 그는 우리의 땅이요, 우리의 세계요, 우리의 왕국이다. 그의 안에서 행하라.

이 그림은 아주 분명하다. 애굽에는 어린양이 있었고, 광야에는 만나가 있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 앞에 가나안 땅이 놓여 있었다. 그것이 목표이다. 그 땅이 하나님의 목표이다. 우리는 들어가야 한다. 그 땅이 우리의 분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포함된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는 그것을 점령해야 한다. 그 땅은 우리의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누려야 한다.

요즘 우리는 교회와, 그리스도의 몸의 표현에 대해 많이 말해오고 있다. 그러나 여러분과 내가 만유를 포함한 분이신 그리스도를 점령하고 체험할 수 없다면 교회의 실제는 결코 있을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여러분과 나는 흙 속에 뿌리를 박은 식물처럼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단지 말로나 이론으로가 아닌, 실제로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소유해야 한다. 흙이 식물에게 모든 것이 되는 것처럼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것이 됨을 알라. 그리스도를 체험하기까지 이것을 깨달아야 한다. 여러분과 나는 이미 뿌리를 박았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그 사실을 우리의 사실로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있다. 골로새서는 우리가 뿌리를 박았으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어져가고 있다고 말한다. 만약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 뿌리 박은 경험이 없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어질 수 있겠는가? 그것이 주님의 백성들 가운데에서 교회의 건축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전히 광야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어떻게 성전과 도시가 이루어지겠는가? 그들이 그 땅을 점령하지 않았으므로 그것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교회의 실제적인 건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의 몸이 실제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가? 그것은 다만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깨닫고 체험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주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기 원한다. (top)

(위트니스 리,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 영문판 p.14-16)

첫째, 이 땅을 소유하는 것은 한 사람의 일이 아니다. 어떤 한 개인이 땅을 소유하기란 절대로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것을 잘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개인적으로서는 결코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소유할 수 없다. 절대로 안 된다! 형제 자매들이여, 꿈꾸지 말라. 그런 꿈은 결코 실현될 수 없다. 이것은 몸의 일이다. 이 땅은 모든 성도와 함께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너무나 위대하다. 그의 광대함은 무한하고, 그의 풍성함은 측량할 수 없다. 이 원리는 주님에 의해서 확고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좋은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획득하는 것은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단체의 몸을 위한 것이다. 주님은 이스라엘 자녀들에게 한 사람씩 점차로, 홀로, 개인적으로 요단강을 건너서 그 땅에 들어가기를 요구한 일이 결코 없다. 한 사람이 이번 달에 들어가고, 또 한 사람은 다음 달에 들어가고, 또 다른 사람은 그 다음 달에 들어가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가 아니었다. 이것은 불가능하며, 하나님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그 땅은 단체의 몸에 의해 점령되어야 한다. 그 땅에는 개인적으로가 아닌 단체적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top)

(위트니스 리,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 영문판 p.90)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물질적 방면은(창12:7, 13:15, 17:8, 26:3-4)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예표인(골1:12) 좋은 땅이었다. 결국 그리스도가 만유를 포함한 생명 주는 영으로 실현되시기 때문에(고전15:45, 고후3:17) 약속한 영의 축복은 약속한 땅의 축복과 부합한다. 사실상 우리 체험 안에서 그리스도의 실제화이신 그 영은 우리가 누리는 하나님의 풍성한 공급의 근원으로서의 좋은 땅이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음의 축복, 신약의 축복은 이 복합적인 영으로서 성육신과 인생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부활과 함께 하는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의 총체이다. 우리 모두는 이 축복을 받았고 이 만유를 포함한 축복은 우리 안에, 우리의 영안에 있다(롬8:16, 딤후4:22). 하나님의 경륜은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의 삼일 하나님이 그분의 모든 속성과 미덕으로 우리의 영안에 그분 자신을 분배하시는 계획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이 완전하고 집합적인 영에 열 때, 우리는 신약의 만유를 포함한 축복을 누린다. (top)

(위트니스 리, 신성한 경륜, 영문판 p.89-90)

갈라디아서 3장 14절은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바울은 아브라함의 축복과 성령의 약속을 언급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물질적 방면은 좋은 땅인데(창12:7, 13:15, 17:8, 26:3-4) 이는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예표이다(골1:12 회복역 각주 2번 참조). 결국 그리스도가 만유를 포함한 생명 주는 영(고전15:45, 고후3:17)으로 실현되셨기에 약속하신 영의 축복은 약속한 땅의 축복과 부합된다. 사실상, 우리의 체험 안에서 그리스도의 체현이신 그 영은 우리가 누리는 하나님의 풍성한 공급의 근원이신 좋은 땅이다. 그러므로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안에서 살고 행하는 것은 만유를 포함한 영안에서 살고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5장 16절은 “성령을 좇아 행하라”고 하며 로마서 8장 4절은 “영을 좇아 행하라”고 말한다. 그 영은 지금 우리의 거듭난 영안에서 거하시며 우리의 거듭난 영과 연합되셨다. 우리는 반드시 연합된 영안에서 지속적으로 살고 움직여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려야 한다. 신약 안에서 연합된 영을 따라 행하는 것 보다 더 기본적이고 더 중요하고 더 능력 있는 것은 없다. 그리스도는 생명 주는 영이 되시어 우리의 영안에서 거하시며 우리의 생명과 인격과 모든 것이 되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분께 돌이키고 우리의 생각을 영에 두고 영을 따라 살고 움직이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안에서 살고 행하는 것이다. (top)

(위트니스 리, 진리, 2단계, 4권, 영문판 p.4, 7-8)


왕 국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는 왕국 씨앗으로 믿는이들 안에 뿌려졌다(마13:3, 막4:26). 주님 자신은 믿는이들 안에 왕과 씨앗으로 계신다. 예수는 왕(king)이시고 우리는 “범위(dom)”이다. 왕국은 왕의 표현이나 연장이다. 왕은 씨앗이고 교회는 연장이다. 믿는이들 안에서 씨앗으로의 왕의 확장은 왕국이다(막4:26-29). 주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유대인들 사이에서와 제자들 안에 왕국을 심으셨다(눅17:20-21). 왕국은 내적인 것이다. 외적으로는 이것을 볼 수 없다. 주 예수님은 왕국을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top)

(위트니스 리, 기본 계시, 영문판 p.86)


지방 교회

합당한 지방 교회로 모이기 위해 우리는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그 중심으로하고 과정을 거친 삼일 하나님을 표현으로 하는(골3:10-11, 딤전3:15-16) 적절하고도 합당한 인도직분을 가져 좋은 질서를 지킬 필요가 있다(고전14:40). 각 교회 안에서 우리는 합당한 인도직분을 가져야 하며 이러한 인도직분은 신성한 권위, 즉 하나님의 행정 안에서 그분을 대표하는 권위이다. (top)

(위트니스 리, 사탄적인 혼란, 영문판 p.122)

우리는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몸인 교회에 관한 진리들을 매우 강조해서 가르칠 필요가 있다. 결국 교회는 영원 가운데 충만하게 삼일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해서 변화되고 세 부분으로 된 사람과 연합되신 과정을 거친 삼일 하나님의 궁극적인 표현인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되었다. 신성한 진리들에 대한 우리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분배하심의 궁극적인 완결인 새 예루살렘을 포함해야 한다. 유럽에 갈 때 우리는 분열을 야기하는 논쟁이나 싸움을 일으키는 어떤 작은 요점을 주의하지 않고 신성한 진리의 중심 노선을 중점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top)

(위트니스 리, 세계 정세, 영문판 p.41)

내 요점은 우리 모두가 우리 자신이 어느 것에서도 특별해지지 않기를 배워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중심이시고 그리스도가 둘레이시며 그리스도가 모든것이시다. 우리가 교회로서 함께 모일 때, 우리는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 외에는 어느 것도 가져오지 않고 가져와서도 않된다. 우리는 침례나 방언이나 떡을 뗌이나 집회순서를 위해 있지 않다. 우리는 그리스도 한 분만을 위해 있다. 말을 하기는 쉽지만 이렇게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 한번은 만찬집회때 포도 주스를 사용하는 지방의 형제가 포도주를 사용하는 다른 지방에 갔었다. 그가 그 차이를 발견했을 때, 그는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나중에는 그의 의견 차에 대해 많은 말을 했다. 형제 자매들이여, 우리는 반드시 교회 실행 안에서 어느 것도 특별하게 만들지 않는 합당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만약 무언가가 특별하게 되게 한다면, 여러분이 그 특별한 문제에 관해 종파적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top)

(위트니스 리, 생명과 길, 영문판 p.105-106)

주님은 우리가 죄인들에게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전하고 성도들에게는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로 전파하도록 우리를 보내셨다. 우리는 교회 건축을 관점으로 하여 그분을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사역해야 한다. 만약 여러분의 일의 관점이 여러분의 사역을 확대하고 건축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여러분은 반드시 한가지 의도와 한 목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여야 하는데 이는 성도들을 지방 교회로서 건축해 단체적인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것이다. (top)

(위트니스 리, 생명과 길, 영문판 p.113)

우리는 또한 시편 133편에 따라 기름과 이슬과 생명을 포함하는 실제가 필요하다. 우리 집회에 기름이 있는가? 기름은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영이다. 우리가 함께 모일 때마다 반드시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가 그 영으로서 우리를 통해 우리 사이에서 움직이시고 역사 하셔야 한다. 교회 집회에서는 그 영의 흐름이 있어야만 한다. 성도들 사이에서 그 영의 역사와 움직임과 흐름인 기름부음이 있어야만 한다. 이는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우리의 매일의 실행을 필요로 한다. (top)

(위트니스 리, 생명과 길, 영문판 p.146-147)


주의 회복

우리는 어느 것도 강요하지 않고 어느 것도 반대하지 않는다. 대신에, 우리는 단지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추구한다. 우리는 어떠한 길이나 실행을 위해 이곳에 있지 않다. 우리는 단지 주님을 추구하고 그분의 죽음의 형상을 이루도록 이곳에 있다.

우리가 무엇을 하던 그리스도의 죽음의 형상을 이룸으로 해야 한다. 모든 것을 이렇게 한다면 더이상 아무 문제가 없고 우리는 한 가지만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가 반드시 우리의 체험과 목적과 상(prize)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가 모든것이다. 주의 회복 안에는 그리스도 외에 아무 것도 없다. 이것이 주의 회복 안에서 우리가 취하는 유일한 길이다. (top)

(위트니스 리, 그리스도를 체험함, 영문판 p.197)

회복 안에서 주님은 마태복음부터 계시록까지의 진리를 회복하셨다. 특히 주님은 만유를 포함하신 그리스도와 새 예루살렘에 관한 진리들을 회복하셨다. 회복 안에 있는 진리는 지난 십구 세기 동안의 진리의 완성이다. 우리는 앞서간 모든 지파들의 어깨 위에 서 있다. 따라서, 진리는 우리를 위해 축약되고, 농축되고, 결정화되었다. (top)

(위트니스 리, 여호수아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79)


믿는이들의 분깃

언약의 사자(angel)로서 그리스도는 언약한 삼일 하나님의 풍성을 그분의 선민 안으로 분배한다. 사도행전 26장 18절 하반부에 따르면 우리는 죄사함만 받았을 뿐 아니라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었다. 이 분깃은 삼일 하나님이 갖고 계신 모든 것과 그분이 이루신 모든 것과 그분이 그분의 구속받은 백성들을 위해 하실 모든 것과 삼일 하나님 자신이다. 삼일 하나님은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안에 체현된 분으로서 그들의 기업이신 “성도의 부분의 기업”이시다(골1:12).(top)

(위트니스 리, 소선지서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223)

사도행전 26장 18절은 믿는이들의 신성한 기업을 가리킨다. 이 기업은 삼일 하나님이 갖고 계신 모든 것과 그분이 이루신 모든 것과 그분이 그분의 구속받은 백성들을 위해 하실 모든 것과 삼일 하나님 자신이다. 이 삼일 하나님은 만유를 포함하신 그리스도안에서 체현 되셨고(골2:9) 성도들에게 기업으로 할당된 분깃이시다(골1:12). (top)

(위트니스 리, 결론, 영문판 p.2756)

골로새서 1장 12절은 아버지께서 우리가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셨다고 말한다. 성도들의 분깃은 우리의 누림을 위한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이시다. (top)

(위트니스 리, 훈련생들에게 주는 메세지, 영문판 p.135)

그리스도는 모든것이시며 이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는 생명 주는 영이 되셨다. 이 생명 주는 영은 우리의 영안에서 내주하여 주와 합하는 자는 한영이다(6:17). 오늘날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의 모든 항목들은 우리의 영안에 거하여 우리의 분깃이 되시는 생명 주는 영의 요소와 구성 성분이다. (top)

(위트니스 리, 생명이신 그리스도, 영문판 p.53-54)

지난 메세지에서 우리는 빌립보서 3장에 있는 다섯 개의 중요한 항목들을 보았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뛰어남,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 그리스도의 고난의 교통,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음. 이 다섯 가지의 중요한 것들은 한 개념-그리스도에 의해 삶으로 그분을 얻음-과 관련되어 있다. 빌립보서 3장 12절의 “얻었다”는 단어는 그리스도를 체험함과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를 얻는 것은 그리스도를 잡거나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모든것이시며 우리의 분깃과 운명이시며 심지어는 목적지이다. 지금 우리는 반드시 그분을 붙잡고 그분을 소유해야 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좋은 땅을 소유한 것과 비슷하다. 그 땅은 그들에게 운명지어졌고 할당되었지만 그들은 그 땅을 조금씩 조금씩 취해야 했다. 그들이 땅을 더 소유할 수록 그들은 땅을 더 얻었고 그들이 땅을 더 체험할 수록 그들은 그 땅을 더욱 누렸다. 그 땅은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온전한 예표이다. 우리의 분깃으로서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주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을 취해야 하고 획득해야 하고 얻어야 한다. (top)

(위트니스 리, 그리스도를 체험함, 영문판 p.75)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에서 아버지는 좋은 땅으로 예표된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이신 아들을 믿는이들에게 그들의 영원한 분깃으로 할당하셨고 그들을 그분 안으로 옮기어 그들이 그분에게 참예케 했다(골1:12, 고전1:30, 9). (top)

(위트니스 리, 역대상ㆍ하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1)

고린도 전서는 모든 믿는이들의 분깃이시고 우리를 그분의 교통 안으로 부르신 바로 그 그리스도가 만유를 포함한 분이심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분은 먼저 우리의 분깃이며 교통이시다(1:2, 9). 그분은 우리에게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이신(1:24, 30)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영화롭게함을 위한 우리의 영광이시어(2:7, 롬8:30) 영광의 주님이시다(2:8). 그분은 하나님의 깊이(깊은 것)이시다(2:10). 하나님은 충분히 비밀스러우시지만 이 하나님께는 깊이가 있다. 그리스도는 이 가장 비밀스러우신 하나님의 깊이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의 건축의 유일한 기초이시다(3:11). 그분은 우리의 유월절이시며(5:7) 누룩 없는 떡이시며(5:8) 영적 음식이고 영적인 음료이시며 영적인 반석(10:3-4)이시다. 그리스도는 움직이는 반석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따라다녔던 따라다니는 반석이시다. 그분은 머리이시며(11:3) 몸이시다(12:12). 고린도 전서 15장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첫 열매이시며(20-23절), 두 번째 사람이시며(47절), 마지막 사람(45절)이심을 보았다. 그리스도가 첫 째고 둘 째고 마지막이기 때문에 그분이 모든것이시다. 그러한 분으로서 그리스도는 생명 주는 영(15:45), 앞에서 언급한 모든 항목들의 총체가 되었다. 적어도 열 아홉 개의 항목의 풍성들을 갖고 있는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는 생명 주는 영안에 총계되었다. 하나님은 그러한 분을 우리의 분깃과 누림으로 주셨다. (top)

(위트니스 리, 신약 경륜, 영문판 p.141-142)

골로새서 1장에는 그리스도가 누구이시며 어떠한 분인지에 관한 높은 계시가 있다. 사실상, 이 책은 그리스도가 누구이심보다는 어떠한 분이신 지에 관해 더 보여준다. 하지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단지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만 안다. 그들은 그분의 어떠하심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다. 만약 우리가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안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분이 누구이신지뿐만 아니라 그분이 어떠한 분이신지도 알아야 한다. 그분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아는 것보다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아는 것이 더 쉽다. 골로새서 1장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성도들의 분깃이시고(12절)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며 모든 피조물 보다 먼저 나신 분이시며 몸의 머리이시고 시작이시며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나신 분이고 모든 충만이 기쁘게 거하셨던 분임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충만은 그리스도의 어떠하심과 관련이 있는가? 아니면 그리스도가 누구이신 지와 관련이 있는가? 말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바울은 충만을 인격화했다. 이는 충만을 인격으로 여겼다는 것을 나타내는데 왜냐하면 충만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길 기뻐하셨고 모든 것을 화목 시키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산 인격의 기능이지 어떤 물건의 기능이 아니다. 1장에서 나타난 그리스도의 방면들을 볼 때 어떤 부분은 그리스도가 누구이신 지에 관련되었고 다른 것들은 그분이 어떠하신 지에 관련되어있음을 볼 수 있다. (top)

(위트니스 리, 골로새서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339-340)


구 원

결국, 하나님의 의와 그리스도의 생명과 믿는이들의 믿음 이 셋 모두가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가 된다. 그러므로 이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는 중심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역동적인 구원의 구조물도 된다. (top)

(위트니스 리, 완전한 구원 결정 연구, 영문판 p.1)


그 영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이신 생명 주는 영은 과정을 거치고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의 완결이다. 이 영은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의 실제이다. 더욱이, 이 영, 완결되신 삼일 하나님은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신 공기와 같은 그리스도이다. 이 모든 것의 총체는 생명 주는 영이다. 그러한 놀라운 것은 마태복음부터 계시록까지의 신약에서 상세히 나타나있다. (top)

(위트니스 리, 열왕기 상ㆍ하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123)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가 어떻게 우리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가?”라고 다시 물어야 한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고 성경은 우리 손안에 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사실상 놀라우신 그리스도,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 복합적인 그리스도이다. 내가 복합적인 그리스도라고 말할 때 나는 이 그리스도가 더 이상 단순한 하나님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분은 하나님이시지만 또한 사람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이 성육신 하여 사람이 되셨고 지금 그분은 여전히 인간의 본성을 갖고 계신다. 그분은 인간이실 뿐 아니라 신성하시다. 그분은 복합적이시다. 그분은 또한 십자가에 가셔서 못 박히셨다. 그분은 사망 안으로 들어가 사망을 통과해 사망에서 나오셨다. 사망은 그분을 붙잡을 수 없었다. 그분은 사망을 이기고 사망을 정복하고 사망에서 걸어나오셨다. 그리고 부활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셔 보좌에 앉으셨다. 그분은 이 모든 것들을 성취하시고 우주 안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얻으셨다. 그분의 성취는 완전한 성취였고 그분이 달성하신 것은 최고였다. 그분은 신성한 본성과 사람의 본성을 갖고 계시며 완전히 성취하셨고 최고로 도달하셨다. 그분은 복합적인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은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이지만, 오늘날 그분은 성령으로 우리 안에 계시다.

성령이 그리스도가 아닌 또 다른 분이라 생각하지 말라. 그리스도는 영이시다. 고린도 전서 15장 45절 하반부는 마지막 아담이 생명 주는 영이 되셨다고 한다. 마지막 아담은 그리스도이고 의심할 여지없이 생명 주는 영은 성령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그 영이 되셨다. 또한 고린도 후서 3장 17절은 주가 영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성경에서 인용한 것이지 우리의 해석이 아니다. 주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바로 그 성령이시다. (top)

(위트니스 리, 그리스도의 성장, 영문판 p.32-33)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가 그리 단순하지 않으심을 깨달아야 한다. 그분은 너무나 광대하시기 때문에 그분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결코 다함이 없다. 신약은 그리스도에 관한 네 가지 주요 항목을 보여주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어떠함, 그리스도가 성취하신 것, 그리스도가 얻으신 것, 그리스도가 도달하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모든 어떠하심과 성취하심과 얻으신 것과 도달하신 것은 생명 주는 영안으로 농축되었다. 생명 주는 영은 그리스도의 이러한 네 주요 항목들의 바로 그 체현이다.

생명 주는 영으로서 그리스도는 어디에든 계신다. 우리는 인간적인 관념으로 예전에는 그리스도가 땅 위에 계셨지만 지금은 하늘에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고(롬8:34) 생각한다. 이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반드시 이 그리스도가 생명 주는 영이 되셨음을 알아야한다. 생명 주는 영으로서 그분은 오늘날 어디에든 계시고 우리가 그분을 영접했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 안에도 계신다(롬8:10). 비록 우리가 이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실제이다. 그분은 우리의 관념과 이해를 넘어서는 분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우리는 반드시 우리가 전하는 바로 그 순간에 그리스도가 함께 계심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로마서 10장 6-8절에서는 믿지 않는 이들이 그리스도를 하늘에서 모셔 내리거나 음부에서 모셔 올릴 필요가 없다고 한다(6-7절). 그리스도는 살아 계신 말씀으로서 그들 곁에 계시며 그들의 입안에 계시며 그들의 마음 안에 계셔 그들이 그분을 영접하기를 기다리신다. 만약 그들이 단지 그들의 입을 열고 그들의 마음으로부터 “주 예수여 당신을 믿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리스도는 그들 안으로 들어가신다.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는 실제이시고 살아 계신 인격으로 생명 주는 영이시다. 그분은 종교의 조직도 아니고 가르침의 집단도 아니다. 우리가 그분을 영접하고 그분 안으로 믿었기에 이 놀라우신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는 생명 주는 영으로서 지금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우리와 연합하여 우리와 한영 되신다(고전6:17, 딤후4:22, 롬8:16). 주님과 한 영 되는 것이 우리가 그리스도를 누리는 열쇠이다. 그리스도의 어떠하심과 성취하신 것과 얻으신 것과 도달하신 것 모두가 다 이 한 생명 주는 영안에 농축되어 있다. 이제 우리는 그분과 합했다. 그분을 그러한 생명 주는 영이시고 우리에게는 거듭난 영이 있고 이 두 영들은 하나로 연합되었다. (top)

(위트니스 리, 우리의 분깃, 영문판 p.16-17)


변 화

변화를 통해 우리는 생명 요소인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로 조성된다. 우리는 또한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요소로 공급받는다. 우리는 삼일 하나님이 인성 안에서 생명의 근원으로 체현 되신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가 생명 나무로 상징되는 것을 보았다(창2:9, 계2:7, 22:2). 하나님이 하늘과 땅과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사람을 생명나무 앞에 두셨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에 따라 지으심을 받았으나(창1:26), 이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생명을 갖고 있지 않던 사람을 상징하는 나무를 본다.

하나님은 생명 나무를 포함한 동산 안에 모든 나무가 보기 좋고 먹기 좋다고 말씀하셨다(2:9). 하나님의 갈망은 그분과 사람의 연합이고 사람이 그분과 연합하는 길은 먹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로 그분은 그분 자신을 먹을 수 있는 분으로 만드셨다(요6:57).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다. 어떻게 아담이 생명 나무와 연합될 수 있는가? 그 생명 나무가 어떻게 아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가? 유일한 길은 아담이 먹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위(stomach)를 주셨다는 것은 참 흥미롭다. 만약 우리에게 위가 없다면 우리는 결코 배고픔을 느끼지 않고 먹어야 할 필요를 못 느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위는 우리를 힘들게 한다. 우리가 잘못된 것을 먹었을 때 아프고 질병이 생긴다. 하지만 생명 나무는 완전히 순수하게 좋은 것이다. 우리가 이 나무를 먹으면 생명을 얻고 건강해 질 것이다. 생명 나무를 먹음으로(계2:7b) 우리는 하나님과 연합되고 이 연합은 조성이다.

우리의 물질적인 몸은 매일 매일의 생명 공급으로 조성된다. 음식이 우리 위(stomach)에 들어올 때 조성 작업은 진행된다. 그런 후에 우리는 생명 안에서 자란다. 이러한 조성의 과정에서 변화가 있다. 아침에 아침식사를 먹으면 그 날 동안 우리가 먹은 것은 소화되고 우리의 존재 안으로 동화된다. 이 생명 요소는 우리의 존재를 조성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우리 안에서 조성의 역사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그림이다. 우리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으로서 영생의 말씀 안에 체현 되시고(요6:57a-58b, 51, 68) 생명 나무이시고(계2:7b) 감추인 만나이신(17b) 그리스도를 먹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먹음으로 우리는 우리의 생명 요소이신 그분으로 조성되고 공급되어 생명 안에서 자라 생명 안에서 변화 받을 수 있다. (top)

(위트니스 리, 조성, 영문판 p.95-96)

우리는 주님의 요소와 함께 주의 영으로부터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르는 그분의 형상 안으로의 변화를 위해 주님의 영광을 바라봄으로 또한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를 누린다(고후3:18). 오늘날 우리 모두는 수건이 벗겨진 얼굴, 어떠한 수건으로도 가려지지 않은 얼굴이 필요하다. 그렇게 수건이 벗겨진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다. 우리가 이렇게 주님의 영광을 더욱 바라볼 수록 우리는 주 영으로부터 더욱 변화된다. 주 영(The Lord Spirit)은 전달을 의미한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볼 때 전달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전달은 주님의 요소와 함께 하는 주 영으로부터이다. 변화는 다른 요소가 더해져야 한다. 그러한 더해짐이 없다면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 주 영으로부터의 전달을 통해 주님의 요소 안에서 우리는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 받는다.

우리 모두가 아침에 다 바쁘지만 우리는 반드시 최선을 다 해 십 분이나 십 오분씩 매일마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시간낭비가 아니다. 가능하다면, 우리는 잠자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우리가 만약 대게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났다면 우리는 십 오분 일찍 일어나서 십 오분을 얻을 수 가 있다. 만약 우리가 다른 일에서 십 분을 절약한다면 매일 매일 이십 오분동안 주님을 바라볼 수 있다. 그분을 바라봄으로 우리는 주님의 요소를 받아 심지어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르기까지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형상 안으로 변화 받을 수 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누리는 방법이다. (top)

(위트니스 리, 중심 노선, 영문판 p.204-205)